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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1등을 하기위한 CEO들을 위한
비즈니스 성장 단계에 많이 활용하는 전략 ‘란체스터전략’



광고전략, 홍보전략, 마케팅전략 등과 같이 기업활동에 자주 사용하는 전략

(Strategy)이라는 말은 원래 전쟁용어입니다. 요즘 기업경영의 현장은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보다 경쟁이 치열해졌고 경

쟁에서 이기지 못한 기업은 전투에서 패한 군인처럼 살아남을 수 없게 됐습니다. 기업경영에서 전쟁이론인 병법(兵法)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

기업경영에 자주 등장하는 병법으로 동양에 손자병법이 있다면 서양에는 란체스터 전략이 있습니다.

영국의 과학자 프레드릭 란체스터(Frederic Lanchester, 1868~1949)가 이론화한 란체스터 전략의 핵심은 초기 전력이 조금이라도 우세한 쪽이 결과적으로압도적인우세를보인다는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군 전투기가 5대, 적군 전투기가 3대라면 전력 차는 5 대 3이아니라 52(=25) 대 32(=9), 즉 5 대 1.8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을‘전력의 승수효과(Multiple Effect)’라고 합니다. 그런데전쟁이론이기업경영과무슨상관이있을까요? 마케팅도전쟁과비슷합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한 광고와 홍보활동을 총 동원할 정도이니까요. 

란체스터 전략의 핵심은 초기 투입전력에 있습니다. 이것을 시장에 대입해보면, 초기에 시장점유율 우위를 차지한기업이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있다는뜻이 됩니다. 기업이초기시장점유율에 사활을 거는 것도바로 이 때문입니다.

한번 시장점유율에서 뒤쳐진 기업이 1위를 따라잡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시장점유율 차이가 2 대 1이라면 승수효과의 결과로 4배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1위업체보다4배이상좋은제품이나기술을확보하고있어야한다는뜻이죠.

기업의 영향력이나 수익률도 승수효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시장점유율이7 대 3인 두 기업이 있다면 수익률 차이 역시 승수효과가 적용되어 49 대 9, 즉 7 대 1.2가 됩니다.




용어선택에서도시대를앞서간경영학의아버지, 피터드러커

요즘에는 전략이라는 말을 빼놓고 기업경영을 논하기 어려울 정도가 됐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전략은 정치 분야에서나 가끔 사용하던 용어였습니다.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1964년에 출판한《성과 경영 (Management of Result)》의 원래 제목은《비즈니스 전략(Business Strategies)》 이었습니다. 하지만 출판사가 시장조사를 해보고 나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전

쟁에서나사용하는용어를경영에갖다붙이기가너무섬뜩했다나요? 어쨌든용어선택에서도 시대를 앞서간 것을 보면 역시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겠군요.




전투기에서힌트를얻은란체스터전략

제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전투기가 등장합니다. 총칼을 주 무기로 사용하던 이전의 전쟁과는 양상이 크게 달라졌죠. 적군의 전력을 분석하는 것도 매우 어려웠습니다. 수학에 정통한 란체스터는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전 때의 전력을 수학적으로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전투기를 이용해 원거리에서 싸우는 집단전투에서 총 전력은 투입전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투입전력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아군 전투기가 5대, 적군 전투기가 3대라면 전력 차는 5 대 3이 아니라,52대 32이 된다는 것이죠.
이것을‘전력의 승수효과’라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등장한 란체스터 전략은 손자병법에 비해 오래되진 않았지만미육군전략의기본개념으로사용될정도로높이평가받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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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르는 텐센트의 최대주주- 남아공의 투자 재벌 네스퍼스의 비밀

뉴스상에서 존재하는 일련의 기사들은 외부적인 정보만을 담고 정보에는 다양한 정치와 비즈니스만이 존재한다. 그래서 미디어를 참조하면서도 조심해야하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본다.
대부분 우리는 회사의 브랜드를 보면 그 브랜드 자체에 집중하지만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는 지분과 회사의 수익을 위한 다양한 투자가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모르는 실질적인 그리고 그 존재조차 몰랐던 다양한 재야의 쟁쟁한 기업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새삼느낀다. 네스퍼스가 한국의 다음카카오의 2대주주(김범수 의장 다음으로 많다.), CJ E&M의 3대주주, 300억 넘게 한국 벤처기업에 지분투자한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는 그저 카카오는 카카오 그렇게 생각하는데 익숙한 듯하다. 적어도 비즈니스나 경제를 매일 접한다면 이러한 이면에 큰 경제적인 흐름에 민감하고 익숙해야한다.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업체 텐센트의 최대주주는 지분 33.6%를 보유중인 남아공의 언론재벌 네스퍼스(Naspers). 중국인 창업자 마화텅의 지분율은 10%에 불과하다. 네스퍼스 지분이 3배 넘게 많아서 텐센트는 사실상 남아공 자본 소유라고 보면 맞다.


기억하라 네스퍼스의 베커회장 - 상당한 내공의 투자자로 소로스급 귀재인듯하다.

, 동양식 투자방식이 아닌 서구식투자방식이지만 이정도로 공격적인 투자는 일반적인 상상을

넘어서고 있으며 국내의 옐로우모바일이 이러한 행보를 하는 것을 보면 두곳 모두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는듯하다. 물론 일본의 손정의 회장도 그러하지만 손정의 회장은 국가기반산업위주로 전환한지 좀 되서 일반적인 서비스 베이스의 IT투자 기반에서는 새로운 신진세력들이 급성장하는 듯하다
.
베커회장 배울게 많은 마인드의 소유자인듯하다. 옐로우모바일도 이렇게 성장했으면 한다.

 2001년도에 350억투자해서 요즘 주가 기준으로 시가총액 150조 넘어가니까 33% 곱하면 50조원! 350억이 50조원이 되었다. 1500배 수익률 기록! 그래도 알리바바 손정의의 2500배보다는 낮다. 역시 손정의가 갑!

 


네스퍼스는 어떤 회사인가
?

그럼 네스퍼스가 모하는 회사인지 모르니까 살짝 속살을 들여다보자.
네스퍼스는 1915년 설립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남아공 대표 종합 미디어회사인데, 남아공증권거래소 상장된 10대 기업중 하나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naspers가 지분을 가진 회사들.

현재 최대주주이자 대표이사는 백인 Jacobus Petrus Bekker라는 분. 1997년 네스퍼스의 최대주주가된 Bekker씨는 인터넷산업에 공격적 투자를 감행한 장본인이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러시아의 최대 온라인기업 Mail.ru도 텐센트 못지 않은 대박 투자사례다.

베커씨가 대표이사 취임이후 네스퍼스의 주가상승률은 30배라니 할말이 없을 정도다. 남아공판 손정의라고 할만하다. 베커는 미국 컬럼비아비즈니스스쿨에서 MBA 과정중에 미디어산업에 눈을 떴다고 한다. 역시 교육은 미국이 답이다.

네스퍼스는 본사는 남아공이지만 태국, 필리핀, 러시아, 브라질, 유럽 등 전세계 130여개국의 인터넷/미디어산업에 전방위적인 투자를 공격적으로 감행하는 미디어산업 특화된투자회사라고 보면된다.

글로벌 인터넷/미디어그룹 네스퍼스에게 텐센트 지분투자는 수백개의 투자포트폴리오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런 측면에서 알리바바에 대한 손정의의 투자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들의 성공 전략은 중국 기업에 대한 재무적 투자자로 숟가락 얹는전략이다.

 

네스퍼스의 전략, 대박을 위해 일단 샀다면 팔지 않는다


 

이를 가능케한 중요한 덕목은 속칭존버(존나게버티기)정신’! 중국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애초에 들어간 지분 하나도 안팔고 버틴다. 그래야 대박을 그대로 경험하니까. 10배 수익났다고 흥분해서 지분팔고 나오지 않는다.

네스퍼스는 2001 5월에 최초 투자했으니까 만으로 13년 넘게 투자지분을 한주도 회수하지 않고 있다. 이걸 베커씨는 엄청나게 자랑스럽게 여기고 언론에서도 강조한다.

2004년도에 텐센트 상장하면서 지금까지 10년동안 지분을 팔 기회는 무수히 있었다. 주가가 계속 미친듯이 올라서 지분을 팔 유혹도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이 엄청난 텐센트의 성장 동안 한 번도 매도가 없었다.

헌데, 기다린다. 버티니까 대박은 또 더 큰 대박이 되었다. 잘 버티는 재무적 투자자 전략은 이제는 전략적 투자자가 된 것이다. 버티고 안나가는 전략을 가진 전략적 투자자로~!

중국 정부에서도 얼마나 눈엣 가실까? 중국 게임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하고 이제는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사가된 텐센트의 최대주주가 남아공 재벌이라는 사실이.

 

텐센트에는 네스퍼스의 DNA가 담겨 있다


 

어쩌면 텐센트의 공격적인 외국기업 인수가 성공적이었던데는 최대주주인 네스퍼스의 DNA가 이식된 것이 비결일 수도 있다. 텐센트는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League Of Lengend(LOL)의 개발사인 Riot Games를 인수해서 온라인게임업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당시에 과연 중국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후 시너지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의문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 텐센트는 전혀 중국적이지 않게 인수후통합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고, 기존 미국 Riot의 역량은 그대로 보존한 채 중국의 규모를 얹어서 스케일을 키워나가는데 성공한다.

일단 규모가 있으니 돈이 안 되도 라이엇 게임즈를 지르고 본 텐센트.



4000억 라이엇게임즈-720억원 카카오 투자 '신의 한수'


 

결국 한국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엄청난 히트를 이어나가서 오늘에는 텐센트의 글로벌 인수합병 실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적다. 세련된 인수합병 전략을 실행하는 텐센트를 그냥 중국적인 시각에서는 설명되지 않는다. 배경에 글로벌 인터넷/미디어 재벌 네스퍼스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네스퍼스의 글로벌 투자역량이 텐센트에 투영되서 한국 시장에서도 실력이 발휘된다. 결과는 다음카카오의 2대주주(김범수 의장 다음으로 많다.), CJ E&M 3대주주, 300억 넘게 한국 벤처기업에 지분투자한 것이 그 증거다.

텐센트의 한국 투자 동향을 보면 지난해만 3월 넷마블에 5300억원 투자(지분 28% 확보), 9월 파티게임즈에 200억원 투자(지분 20% 확보), 11월 4:33에 1200억원 공동투자 및 '블레이드' 중국 퍼블리싱 계약으로 이어졌다. 스타트업 투자로는 한국캡스톤파트너스를 통해 1560억 펀드에 투자했다. 현재 다음카카오 3대 주주(9.9%, 720억투자, 2012.4.6.)로 명실상부 한국 게임의 절대 강자로 껑충 뛰어올랐다.

앞으로 텐센트는 네스퍼스의 역량을 등에 엎고 한국 뿐 아니라 전세계 인터넷 모바일 업계를 들었다 놨다 할 것이다. 그것도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그 이면에는 글로벌 인터넷 미디어 재벌 네스퍼스, 그리고 베커라는 사람이 있다.

 
[아래는 텐센트 최근 인수 혹은 투자한 기업들 정리] - 알야야 한다. 정보는 팩트고 인포메이션은 생명력이 있는 유기체다. 이러한 흐름을 모르고 비즈니스를 하게 되면 항상 엔드유저처럼 사용자측면에서 고민하게 되는것이 비즈니스 생리인듯 하다.

E-House (부동산중개) 2000억원, 15% 지분
Sogou (온라인검색) 5000억원, 36.5%
CJ게임즈 (현재 넷마블, 온라인게임사) 5300억원, 28%
Futu (실시간주식정보제공사이트)
China South City (홍콩상장, 유통물류업체) 3000억원 투자, 13% 지분
Didi Dache (콜택시앱) 1조원 투자
Renrendai (P2P대부업체) 1500억원
Linktech Navi (온라인지도서비스)
Mob Arts (모바일게임개발) 300억원
Ly.com (17U, 여행예약사이트) 100억원
Dianping (음식점평가 및 예약사이트) 2000억원
JD.com (나스닥상장, 전자상거래) 2500억원, 15% 지분
Naveinfo (나스닥상장, 온라인지도서비스) 2000억원, 11.3% 지분
175Game (온라인/모바일게임사) 300억원
Whisper (고백앱, 미국소재) 400억원
58.com (온라인벼룩시장) 9000억원, 24% 지분
Picooc (웨어러블기기) 250억원
Edaixi (O2O 세탁소앱) 35억원
Scaled Interface (인공지능) 55억원
Kuakao (교육서비스) 50억원
eJiajJie (O2O 청소 가정부 구인앱) 45억원
AltspaceVR (가상현실, 미국소재) 50억원
DXY (온라인헬스케어커뮤니티) 80억원
Woqu (미국전문 온라인여행사) 20억원
Guahao (병원예약앱) 1100억원
CLS (복권사업) 700억원, 7.52% 지분
Koudai (소셜커머스앱) 4000억원
Blink (사집공유앱) 200억원
Huayi Brothers (영화제작사) 6천억원, 알리바바와 공동투자
Renren Kuaidi (공유형 물류서비스) 150억원
4시33분 (온라인게임사) 라인, 한국투자파트너스와 공동으로 1200억원 투자
Dots (모바일게임사) 100억원
Aiming (일본 모바일게임사)
Kamcord (영국 모바일게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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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해외봉사단 무전여행, 못갖춘마디 속에 숨은 행복을 찾아

여름이면 흔히 산이나 들, 가까운 도시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여행에 있어 철저한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한번쯤 옷가지 등 최소한의 준비물만 챙겨들고 무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가진 것도 아는 사람도 없어 불안하지만 인생에서 처음부터 내 것,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었던가. 육체의 성장이 완성되는 시기인 20대,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행이란 자양분을 먹으며 끝없이 커 갈 것이다.

나는 지난 2011년부터 굿뉴스코 해외봉사단 독일 루드빅스하펜Ludwigshafen 지부장으로 있다. 한국에서 온 대학생 봉사단원들과 함께 독일인들에게 한글·서예·대중문화 등 한류 문화를 전파하고, 마인드 강연 및 세미나·캠퍼스 문화공연 및 박람회 등을 통해 현지 청소년과 교류하며 올바른 마인드와 인성을 심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물론 검은머리 외국인이 독일에서 활동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지면서 한류에 대한 유럽인들의 관심도 커져 ‘여러분 이름을 한글로 적어드립니다’라는 문구만 붙여놔도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설 정도다. 그렇게 사귄 독일인들과 다양한 활동을 함께하며 마음을 나누다 보면 문화·언어·사고방식의 장벽을 넘어 어느 새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어 있다. 이는 나나 우리 단원들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이다.
지난 2014년 초, 우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큰 행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행사의 이름은 코리아 캠프Korea Camp! 독일은 물론 이웃 유럽국가들의 젊은이들을 초청해 한국의 문화 및 정신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다른 문화권에서 온 학생들과도 교류하며 국제적인 이해를 도모하고, 나아가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마인드를 전하는 행사다.

 

 

40일간의 무전여행: 돌들의 여정
4월 28일부터 5월 1일까지 3박 4일 동안 캠프를 하기로 하고, 3월 초부터 준비에 돌입했다. 마침 우리 지부에는 독일 각지로 파견된 굿뉴스코 봉사단원 15명이 모여 있었다. 그들로 홍보팀을 꾸렸다. 캠프의 취지와 프로그램 등을 설명하고, 홍보에 필요한 기본적인 독일어를 2주 정도 가르쳤다. 한국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단원들은 독일 생활에 낯설어하면서도 금방 잘 적응하며 마음을 모아 캠프를 준비해 나갔다.
그렇게 한창 캠프를 준비해 나갈 무렵, 우리는 한 가지 큰 문제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가 프랑크푸르트를 개최지로 정한 것은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이자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홍보팀과 함께 프랑크푸르트로 가려고 보니 그곳에는 머물 곳도 연고자도 없었다. 루드빅스하펜 지부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 매일 20여 명이나 되는 인원을 실어나르려면 차량과 운전자가 필요했지만 당장 마련할 형편이 못 되었다. 도로에서 허비할 시간도 아까웠다. 혹 프랑크푸르트와 주변 도시에 우리가 머물 만한 숙소가 있는지 부동산과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았다. 하지만 20여 명이 한꺼번에 묵을 수 있는 집은 없었고, 있다고 해도 한두 달의 짧은 기간으로는 아무도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참 난감했다. 내일이면 단원들과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여 본격적으로 캠프 홍보를 시작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 일찍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인생에 닥치는 어려움 앞에서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할 때면 성경에서 갈 길을 찾았다. 그리고 그 길을 따랐을 때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그때부터 성경을 신뢰하게 됐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순히 사람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도를 하던 중 마음에 구약성경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애굽(이집트)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이끄신 이야기였다. 당시 백성들은 수백만 명이나 되었을 텐데도 하나님이 능히 먹이고 입히고 살리셨는데, 20명 남짓한 우리들이야 못 먹이고 입히실까 싶었다.
‘그렇지! 하나님이면 하실 수 있지.’ 달력을 꺼내 날짜를 살펴보았다. 3월 16일! 우리는 캠프를 위해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큰 호텔을 숙소로 예약해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다음날인 17일부터 호텔에 들어가는 날까지 남은 날을 계산해보니 신기하게도 꼭 40일이 남은 것이었다. ‘그래,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40년간 먹이고 입히신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인도 못하시겠나?’ 내일 당장 프랑크푸르트로 무전 배낭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생각나는 성경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무기는 물맷돌이었다. 그 돌이 생각났다. 돌은 자기가 어디로 날아가는지 몰랐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돌은 정확히 골리앗의 이마를 때려 그를 쓰러뜨렸다. 그것은 돌에게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윗이 그 돌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 돌과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의 손에서 출발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나는 우리가 떠날 무전여행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리가 무전여행을 출발하는 목적은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유럽의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마인드를 심어주기 위함이었다. 우리의 목적은 참으로 분명하고 떳떳했다. 설령 내 앞에 골리앗 같은 큰 문제가 닥칠지라도 능히 넘어뜨리고 승리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전여행을 가자. 프랑크푸르트에서 맘껏 외치며 캠프를 알리자!’
마음에 용기가 일어났고, 우리의 무전여행의 제목이기도 한 ‘돌들의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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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못 잊을 무전여행을 위한 3가지 원칙
그날 학생들과 미팅을 갖고 ‘내일부터 캠프 전까지 40일간 프랑크푸르트에서 무전여행을 하며 캠프를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무전여행의 3가지 원칙을 알려 주었다. ‘첫째, 돈을 가지고 가지 마라. 둘째, 카드도 가지고 가지 마라. 셋째, 배낭은 옷가지를 포함해 최소한으로 챙겨라.’ ‘무전여행’이라는 말을 들은 학생들의 얼굴은 대부분 걱정과 염려로 가득 찼다. 미팅이 끝난 뒤 몇몇 학생들은 조용히 나를 찾아와 물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40일씩이나 돈도 없이 숙식을 해결하고 지내는 게 가능할까요?”
물론 나도 그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은 해 줄 수 없었다. 다만 ‘우리가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이 있든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만 이야기했다. 특수부대 출신의 어느 남학생이 근심 어린 눈빛으로 자못 진지하게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지부장님, 지금 우리 모습이 마치 작전에 투입되기 전의 군인들 같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만 해도 걱정되네요.”
다음날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내 마음에도 걱정이 올라왔다. ‘오늘은 떠나야 하는데, 과연 우리가 제대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는 나의 어떤 의지도, 계획도 무의미했다.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내 인생을 맡겨야 하는 시간이었다. 걱정과 두려움이 올라왔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프랑크푸르트로 떠나기 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독일내 다른 지역 굿뉴스코 지부장님의 전화였다. 자신이 아는 프랑크푸르트의 어느 베트남 신부님과 통화하면서 ‘프랑크푸르트에서 코리아 캠프를 열기로 했고, 이번 주부터 홍보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그랬더니 그분이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일단 우리 성당으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었다.
정처 없이 무조건 발걸음을 뗀 우리의 무전여행은 이렇게 출발하기 전부터 목적지가 생겼다. 성당은 프랑크푸르트 변두리에 있었다. 신부님은 성당에 딸린 부속실 몇 개와 부엌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비록 샤워실은 없었지만,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나눠 지내면 충분할 공간이었다.
짐을 부린 단원들은 곧바로 홍보를 시작했다. 오전에는 대학교와 청소년센터, 중고등학교에서 태권무나 부채춤을 추고 캠프 초청장을 나눠주며 홍보했고, 오후에는 시내 중심가에서 같은 방법으로 홍보했다. 저녁에는 단원들과 미팅을 가지며 초청장을 작성했다. 그날 저녁 신부님은 ‘내일 아침 성당에서 특별 새벽기도회가 있는데 참석하겠느냐?’고 물었다. 우리도 참석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성당의 홀에서 열린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부활절을 앞두고 갖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다. 기도회를 하는 홀 한쪽을 보니 식탁 10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커피잔과 접시, 포크와 나이프 등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어림잡아 40여 명이 식사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식탁, 혹시 우리를 위해 차린 것 아닐까?’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성당 측에 우리의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도와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도회를 마치고 신부님이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한국인들이 함께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며, 우리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했으니 맛있게 드시라는 이야기를 곁들였다.
그날 아침, 우리를 위해 준비된 식탁에서 금발머리의 독일인들이 날라다 주는 커피와 빵을 먹으면서 내 마음에 생각나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광야의 식탁! 우리가 처해 있는 형편은 풀 한 포기 없이 메마른 땅만 끝없이 펼쳐진 광야와 같았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고 또 준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 우리 앞에 생각지도 못한 식탁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참 신기했다. 처음 무전여행을 나왔을 때는 ‘우리가 어디서 잘까? 또 무엇을 먹을까?’ 하고 염려 반 근심 반으로 출발했는데, 생각하지도 기대하지도 못했던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또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마음이 따뜻하고 남을 돕는 사람들이 많구나.’ 마음에 힘이 생겼다.
독일에서 4년을 지내면서 내가 보고 느낀 독일인들은 차갑고 냉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전여행을 떠나 독일인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보니 이들은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주저하지 않고, 피부색이 달라도 낯설어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친절을 베푸는 다정한 이웃이었다. 참 고맙고 감사했다. 무전여행을 계기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낯설거나 차갑지 않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다음날, 신부님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신부님도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한국인을 20여 명이나 받아주면서 내심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혹시 성당을 더럽히거나 어지럽히는 등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제집을 쓰듯 깨끗이 건물을 사용하고 청소와 정돈을 하는 우리 단원들을 보며, 그는 ‘이런 젊은이들은 처음이다’ 하고 신기해하며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그릴 파티를 해주겠다고 했다.
무전여행은 가장 가까이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신부님과 성당측에서 먼저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었고, 우리는 그 도움을 감사해하며 성당을 깨끗이 썼다. 마음이 오가는 동안 모두가 기쁨을 맛보았다. 신부님은 우리에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해 물었다.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하자 한 주간 더 성당에 머물러도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이렇게 프랑크푸르트 변두리의 성당에서 돌들의 여정의 막이 올랐다. 독일의 3월 날씨는 차가웠지만 우리 마음은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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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만이라도
걱정 대신 노래를 불러 봅시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예배당을 비워야 하는 날이 되었다. 그 전에 성당을 떠나던 날처럼 여전히 우리에게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에 용기가 올라왔다. 항상 길이 없어 보였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걱정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부딪혀 보자’는 마음이 일어났다. 매번 부딪힐 때마다 신기하게도 그때 그때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만나노라면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듯 하나씩 맞아들어가는 것이 참 신기했다. 그날 아침, 봉사단원들을 모아놓고 이야기했다.
“오늘 우리는 이 건물을 비워줘야 합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습니다. 우리의 지난 여정을 돌이켜보면 용기를 갖고 부딪혔을 때 길이 열리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길이 열릴 것을 믿고 노래를 불러 봅시다.”
그날도 단원들이 캠프 홍보를 다니는 동안 우리 지부장들은 숙소를 구하러 시내를 돌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거절만 신나게 당하면서 마음 한구석에서 근심이 올라왔다. 하지만 ‘오늘은 노래하자’는 마음이 들어 함께 있는 지부장님과 노래를 불렀다. 어려움과 걱정거리가 없는 게 아닌데도 노래를 부르며 여유를 갖는 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날 저녁 늦게 우리는 새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지부장님이 집에서 해 온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으며 봉사단원 학생들에게 물었다. ‘오늘 하루 노래를 불렀느냐?’고. 그러자 단원들도 다들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어떤 학생은 <강남 스타일>의 가사를 바꿔 ‘우리는 봉사단 스타일, 갈 데까지 가 볼까’ 하고 노래를 불렀단다. 너무도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 좋은 음식을 사먹고 멋진 경치를 봐도 가질 수 없는 기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프랑크푸르트에서 40일을 보냈다. 독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미리 철저히 계획한 채 삶을 산다. 조금이라도 그 계획에서 벗어나면 당황하거나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독일인의 눈에 비친 우리는 아주 특별한 존재들이었다. 아무 계획도, 가진 것도 없어 순간순간 어려움에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며 신기해 했다. 그렇게 보낸 40일은 우리에게도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우리가 과연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것을 보며 점점 마음이 담대해져 갔다.

 

글과 사진 | 오영신 & 굿뉴스코 유럽 해외봉사단   진행 | 김성훈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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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육포럼에서 만난 세계 장차관들과 대학생 봉사자들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 반가운 인물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동안 굿뉴스코 해외봉사 단원들이 활동했던 84개국의 나라에서 온 교육부 장.차관들. 특히 1년간 해외에서 현지인들과 동거동락했던 굿뉴스코 해외봉사자들은 자신들이 다녀온 나라의 장.차관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며 감격해 했다. 해외봉사 이후에도 한국에서 장.차관들을 만나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며 소중한 추억의 순간을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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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지(서울대학교 4학년, 2012년 라이베리아)
오늘 앤써니 앨디너리 니믈리 부장관님과의 만남을 통해 만감이 교차하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지난 2012년, 저는 라이베리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왔습니다. 라이베리아의 수도 몬로비아시는 매달 첫 번째 토요일마다 클리닝캠페인을 펼칩니다. 저희 대학생 봉사단원들도 함께했는데 10명의 동양인 대학생들이 수십 명의 현지 대학생들과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청소하는 모습은 진풍경을 이뤘고 매번 시민들의 관심을 받곤 했습니다.
10월 캠페인 당일에도 아침부터 오후까지 청소하는데 마침 우연히 길을 지나가시던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굉장히 놀라워하신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서 저희와 한참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먼 한국에서 온 굿뉴스코 단원들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해주는 것에 대해 무척 감격하셨고 용돈까지 주시며 격려해주셨습니다. 저희는 그날 언론 방송에도 보도됐고 잊지 못할 추억이 됐어요. 한국에 돌아온 후 에볼라로 인해 늘 걱정이 됐는데 얼마 전 WHO가 라이베리아에 에볼라 종식 선언을 했습니다. 오늘 앤써니 앨디너리 니믈리 부장관님을 만나니 그리워하던 고향 사람을 만난 것 마냥 반갑고 기뻤어요. 또 제가 그곳에서 활동했던 1년을 소개하고 라이베리아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부장관님은 한국 대학생들의 활동에 신기해하셨고, 계속 인연을 맺어가자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앤써니 앨디너리 니믈리Anthony Aldinnary Nimel(라이베리아 교육부 부장관)
한국에는 2010년에 방문한 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인데, 이번 세계교육포럼은 알차고 흥미로운 행사였습니다. 다양한 정보들을 배웠고 보고 들은 그대로 라이베리아에 돌아가서 실행하고 싶습니다. 실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들에 대한 교육과 준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한국 대학생들과의 만남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이들이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1년간 해외봉사를 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 한국에서 이런 젊은이들을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세계가 점점 좁아지고 있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저는 학생들이 준비한 아카펠라 공연을 보았는데, 부르키나파소 장관, 남아공 장관과도 이번 포럼에서 만나 친구가 되었고, 여러 나라에서 온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매해 여름이면 (사)국제청소년연합에서는 10대, 20대 젊은이들의 실질적인 문제를 교류하는 장場인 월드문화캠프를 연다. 세계 60개국에서 온 대학생들은 2주간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도전하고, 교류하여 그들이 꿈을 갖고 변화된 삶을 경험한다. 앤써니 앨디너리 니믈리 라이베리아 교육부 부장관은 직접 이 캠프에 참가하여 교육의 현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고 있는 현장에 참석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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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진(2010년 남아공 해외봉사자)
2010년 남아공으로 해외봉사를 다녀온 후 처음으로 남아공 근처 나라의 장관님을 한국에서 뵙게 되었어요. 레소토, 보츠와나에서 온 두 나라의 장.차관님은 한국이 정말 좋고, 특히 한국 사람이 좋다고 하셨어요. 그 나라의 문화, 음식도 소개해 주시면서 두 분 다 무엇보다 교육에 관해 관심이 많았는데 한국과 비교하여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장.차관님이 저희를 다시 그 나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짧은 만남이었지만 다시 남아공으로 돌아간 기분이었고, 단지 1년 동안 남아공에서 해외봉사를 했다는 이유로 장관님들과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어서 보람됐고,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고향 같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던 하루였습니다.

 

 

정주경(2009년 남아공 해외봉사자)

2009년 해외봉사를 다녀온 이후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이번 기회에 레소토 장관과 보츠와나 차관을 만나면서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해외봉사할 때도 제가 준 것보다 오히려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받아온 사랑이 컸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 영어이지만 장관님은 저의 사소한 이야기에 웃으셨고 말을 걸어주셔서 참 행복했습니다. 레소토 장관님과 저녁 식사를 기다리면서 현지 음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남아공 안에 레소토가 있어서 음식문화가 비슷했어요. 옥수숫가루를 사용해서 만든 ‘빱’이라는 음식은 해외봉사자로 활동할 때 매일 먹던 현지음식이었습니다. 장관님과 저는 ‘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옛 사진을 보여드리니 엄청나게 웃으셨어요. 덕분에 음식 사진 말고도 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었습니다. 보츠와나 차관은 우리의 결혼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양가 부모님께 무엇을 해줬느냐고 물었습니다. 한복을 해드렸다고 했더니 보츠와나 장관님은 소 6마리를 해줬다며 돈이 많이 들었다고, 이게 아프리카 결혼 방식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아직도 그렇게 결혼을 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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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박근혜 대통령의 유학 시절, 그녀는 한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생이 바뀌는 순간을 겪었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 이후 20대 청년 박근혜가 한국으로 돌아와 그 빈자리를 채웠고, 그녀는 한 나라의 의견을 대변하는 외교활동을 자연스럽게 배웠다.
그녀처럼 민간 외교관의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낸 최가영 씨. 평소 소심하고 조용했다는 최가영 씨는 인하대학교 영어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베냉에서 1년간 해외봉사하고 돌아온 최가영 씨는 올해 한국에서 열리는 2015 세계교육포럼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바로 베냉 교육부 콜망 크리스토프 아제비Coleman Christophe Adjebi 차관.
작년 한 해 베냉에서 한글 아카데미, 음악 아카데미 등 여러 가지 다채로운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온 그녀는 한국을 방문한 콜망 크리스토프 아제비 차관과 이야기를 나누자 베냉에서 한국 대학생의 봉사 활동에 감격해 했다.
최가영 씨가 굿뉴스코 해외봉사에 도전한 이유가 있다. 평소 부족함 없는 한국의 환경에서도 이유 없이 만족감이 떨어지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좀 더 적극적으로 인생을 개척할 수 없을까 고민했던 것. 특히 평소 엄마에게 ‘짜증이 난다’는 말을 많이 했던 그녀는 엄마로부터 ‘뭘 해줘도, 아무리 잘해줘도 감사할 줄 모른다’라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때 아프리카 베냉으로 굿뉴스코 해외봉사를 다녀온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그녀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대한민국 사범대학 학생 중에 어느 누가 한 나라의 장.차관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교육 문제를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지금 돌아보면 베냉에서 봉사한 1년이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삶을 선물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봉사를 할 당시에는 조금 힘들고, 아프리카의 환경과 문화가 낯설었지만 그 시간이 신기하게도 저에게 지속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합니다. 차관님을 만날 때도 제가 한 나라에 도움을 주는 일에 같이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감격스러웠어요.”
가영 씨는 차관과 작년 한 해 동안 베냉 수도 코토누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나눴다. 말라리아 걸렸던 사연, 아카데미와 클린 캠페인 스토리, 베냉 청소년들과 함께 월드캠프를 했던 이야기, 베냉과 깊은 인연으로 국제청소년연합이 정부로부터 땅을 기증받아 청소년 센터를 짓는 일, 작년 한 해 베냉 청소년부 차관과 아보메 깔라비 국립대학교 총장님이 포럼에 참석한 이야기 등 이야기꽃을 피웠다.
가영 씨는 차관과 함께하는 서울 투어가 설레면서 긴장된다고. 사실 그녀 자신의 언어 실력이나 여러 가지를 살펴보면 절대 만날 수 없는 기회라고 고백한다.
“지난해 베냉으로 1년간의 해외봉사 활동이 이렇게 큰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피부색부터 환경, 문화,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베냉 차관님과 신기하게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소소한 아프리카의 추억을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도착한 SK T.um. 최첨단의 미래 과학을 기술에 부여한 집, 자동차, 쇼핑에 적용한 것을 직접 체험해보는 멋진 시간 여행 속에서 과묵했던 차관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일정을 뒤로하고 SK T.um 방문에 한국의 과학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한눈에 파악한 듯 감탄했다. SK T.um 방문 이후 안과에서 시력 검사를 마쳤고 조촐하게 한국식 보쌈을 함께 먹었다. 보쌈을 어떻게 먹는지 설명을 듣던 차관은 새로운 한국 음식을 도전하듯 음미했다. 자연스럽게 지금의 교육부 실무자인 차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의 그의 인생 이야기를 곁들어 들을 수 있었다.

 

 

과묵한 콜망 크리스토프 아제비 차관이 입을 열다
한국과 베냉이 거리상 가까운 나라였다면 그는 자신의 자녀를 한국에 유학을 보내서라도 교육을 받게 하고 싶을 만큼 한국이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 와중에 가영 씨는 베냉에서 봉사하면서 어떻게 달라졌고 특히 아버지와 대화 없던 관계가 밝고 소통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자녀를 둔 아버지인 그 역시 즐거워했다. 그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저희 부모님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분이었습니다. 제 가족은 모두 9명인데, 3명의 아들과 4명의 딸이 있는 대가족입니다. 당시 대부분 가난했고 다른 친구들이 학교 가는 걸 싫어할 만큼 그 당시는 학교에 안가도 그만인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셨던 부모님은 누나, 형들 모두 학교에 보냈습니다. 학교에서는 뭔가 잘못을 하면 선생님이 아버지에게 모두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아버지는 학교 선생님과 가까이 지내셨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항상 수업을 빼먹지 않도록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를 올바르게 키우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방과 후에는 스터디 그룹도 만들었는데 항상 수업에 결석하지 않도록 아버지는 헌신적으로 노력하셨습니다. 어머니도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다 주셨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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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g Kong] 중국을 내 가슴에 새겨준 무화

[Hong Kong] 중국을 내 가슴에 새겨준 무화

먼저 다가가는 법을 가르쳐준 친구,  무화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우리 일을 적극 도와준 무화. 부끄럽게도, 나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니까 무화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처럼 어그러진 내 삶의 시각을 무화는 자기 삶으로 고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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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전 홍콩에 처음 왔을 때, 성조(聲調)가 있어서 그런지 아무 표정이 없는데도 사람들이 언성을 높이며 말하는 것이 꼭 화를 내는 것 같아보였다. 지금은 전혀 이상하지 않지만. 홍콩에서는 광동어, 보통화, 영어를 사용하는데, 나는 보통어 공부를 우선으로 했다.

 

하루 빨리 홍콩 친구가 생기길 소망하며 지내던 어느 날, 감사하게도 ‘무화’라는 친구가 찾아왔다. 첫인상은 배우 배용준 느낌이 나는 파마머리에 염색을 했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에 좀 통통한 체구를 가진 순한 얼굴을 가진 친구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는지 조심스레 행동했지만, 장난도 칠 만큼 친해지면서 성격이 밝은 친구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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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홍콩에서 하는 활동들 가운데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 한글 클래스를 하는 것이다. 지금은 홍콩대학교, 홍콩이공대학교, IVE(Institution of Vocational Education)전문학교 세 학교에서 한글 클래스를 하고 있다. 홍콩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문화와 생활습관, 전통놀이, 한국의 명소 등을 소개하고 태권도 시범도 보인다. 무화는 IVE전문학교에 다니는데, 그 학교에서 한글클래스 여는 일을 도와주었다. 또 한글클래스를 할 때면 필요할 때마다 광동어 통역도 마다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돕는다. 뿐만 아니라 홍콩의 이곳저곳을 구경할 수 있도록 가이드도 해주고, 중국 선전(深?)에 있는 자기 집이나 마카오처럼 먼 곳에 다녀오면 꼭 그곳 음식들을 선물로 사와서 우리 봉사단원들에게 주었다. 우리를 챙겨 주는 마음이 보이니까 무척 고마웠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날 오전 11시쯤 무화가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하며 우리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에 따라나섰는데, 어느 식당에 들어가더니 점심을 샀다. 홍콩에서 유명한 ‘딤섬’이라는 음식을 정말 푸짐하게 먹었다. 우리는 차 마시자는 이야기가 차만 마신다는 이야기인 줄로 알았는데, 이곳에서는 밥을 먹자는 이야기였다. 그런 점도 흥미롭게 느껴졌다.

 우리는 무화를 통해서 홍콩의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친구들은 대부분 한국을 좋아해서 우리와 쉽게 친해졌다. 그 친구들에게 한국의 좋은 점들을 소개시켜 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나는 처음에 ‘무화가 우리에게 한글도 배우고, 자기 학교에서 한글 클래스를 열면 자기에게 이익이 있어서 저러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건 단지 내 생각일 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나도 무화처럼 무화에게 마음으로 다가가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전보다 더 친한 친구가 되었다. 무화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고마워해야 할 점이 정말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무화와 자주 만나다 보니 덕분에 우리는 중국어가 부쩍 늘었고, 무화 또한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무화가 우리에게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와 준 모습을 떠올리며, 나도 조금씩 그런 무화의 모습을 배워가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본 사람에게 마음을 열기보다는 예의를 지키기 위해 한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 보통이고, 나 또한 그랬는데,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무화와 함께 지내면서 얻게 된 한 가지 깨달음은 ‘남이 먼저 다가와 주기를 원하지 말고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자’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것이 서툴고 어색하지만, 홍콩에서 1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쯤에는 많이 달라져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무화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마음을 열고 다가와줘서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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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Sports] 김재홍 국제마인드교육원 원장, 해외로 마인드를 수출하다

인간에게 성공과 행복은 삶의 목표요 존재의 이유다. 누구나 성공을 꿈꾸고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현실에서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두 마리 토끼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행복해지려고만 하고 행복하지 않은 걸까? 이러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하는 이가 있다. 이미 국내에 700명의 전문강사를 배출하고 해외로 ‘마인드 교육 프로그램’을 수출하고 있는 국제마인드교육원의 김재홍 원장. 필리핀, 스와질랜드, 베냉 등 해외 교육부의 요청으로 마인드 교육 수출의 역사를 쓰고 있는 그는 ‘성공, 행복은 마인드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필리핀에서 120명의 교사들이 한국을 찾았다. 필리핀 정부에서는 ‘왜 이리 많은 교육자들이 한국을 방문하느냐?’며 필리핀 교육감을 불러놓고 ‘도대체 마인드 교육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다. 도 교육감 역시 속 시원한 해답을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한다. 정부에 보고하기 위해 답사차 한국을 방문한 교육감에게 국제마인드교육원의 김재홍 원장이 직접 ‘마인드가 무엇인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띄워가며 마인드 실전 교육을 했다. 2번의 샘플 강연을 듣고 단번에 그의 마인드 강연에 반했다는 교육감은 ‘이번 교사 교육에 무엇보다 꼭 필요한 강연’이라며 필리핀으로 돌아갔다. 교육감은 교장단 700명을 불러놓고 김재홍 원장에게 초청 강연을 요청했다. 700명밖에 수용할 수 없는 공간에 100명이 더해져 800명이 찾아왔다. 나머지 100명은 강연장의 계단과 바닥에 앉아서 들었던 것. 다음날에는 학교 건물이 완공되어 기공식이 있는데도 마다하고 교육감과 교사들이 그의 강연을 선택해 연이어 들을 만큼 김재홍 원장의 마인드 강연에 푹 빠졌다.

김재홍 원장, 그가 말하는 ‘마인드 교육’이란?
“‘마인드 교육’하면 누구나 생소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변화와 행복을 경험하려면 마인드가 변해야 합니다. 저희 교육원에서는 마인드 교육과 훈련을 같이 받도록 합니다.”
사람의 마인드를 14년간 연구해오면서 경험과 노하우는 축적된 김재홍 원장이 생각하는 마인드란 무엇일까?
“마인드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인드는 삶의 설계도와 같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설계도가 필요한데, 그 설계도를 따라 건물을 짓기 때문에 설계도가 잘못 만들어져 있다면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생에서도 좋은 마인드, 올바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올바른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마인드가 잘못되어 있는데 좋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은 교육부는 7월부터 초.중.고등학교에 인성교육진흥법을 의무화시켰다. 한국 정서가 서구와는 많이 다른 점을 감안하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젊은이들에 대한 염려가 인성교육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정부 시책보다 더 앞서 마인드 교육 관련행사에 뜻을 펼쳐온 김재홍 원장.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그는 마인드 교육의 시발점이 된 1995년 7월 제1회 한미연합청소년수련회에 참석해 미국 교포 2세와 미국 대학생을 만난 사연을 회고했다.
캠프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주로 부유한 집안의 자녀들로 경제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는 욕구 불만과 자제력의 부재라는 문제점을 앓고 있었다.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해마다 청소년 캠프에 참가한 김 원장은 10대와 20대의 인성교육에서 필요한 교육이 ‘마인드’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인드가 변해 새 삶을 사는 대학생
“지금까지 마인드 교육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청소년이 한 명 있습니다. 학생의 아버지는 남미에서 크게 기반을 잡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분이었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은 교포
2세였습니다. 머리를 박박 깎은 채 반항적인 모습으로 캠프에 참가한 학생이 짐을 풀면서 다짜고짜 자신의 아버지를 욕하는 게 아닙니까. 캠프에 참석하면 5천 불을 준다는 아버지와의 약속 때문에 참석했는데, 주변 교사들은 그에 대해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그 학생은 자신이 원래 반항적이라며 욕설까지 서슴없이 해서 누가 봐도 문제 학생이었다. 캠프의 스케줄은 아랑곳없이 밤낮이 바뀐 채 잠만 자던 학생은 자신처럼 캠프에 적응하지 못하고 놀고 있는 무리를 찾으려다 마침 늦은 시각 불이 켜져 있는 식당 부엌까지 다다랐다.
“캠프 교사들은 그 밤에 다음날 학생들이 먹을 김밥을 열심히 싸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학생이 깜짝 놀랐어요. 잠도 자지 않고
희생하는 교사들을 보며 그 학생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자신처럼 형편없고 부족한 학생을 위해 진심으로 수고하는 교사들의 마음을 알게 된 후 학생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캠프가 끝나고 김재홍 원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들이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했다’며 학생의 부모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온 것이다. “젊은이들은 연한 가지와 같아서 이끌어주면 안 될 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심을 보여주고 리드하면 학생들은 달라지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수천 명이 참석하는 캠프 때마다 매년 달라지는 학생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당신의 마인드 급수는?
지도상에서 어떤 목적지를 찾아갈 때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모르면 찾아갈 수 없다. 시중에서 교육하는 인성 교육은 바람직한 인성에 대해 말해주고 있지만 어떻게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는지 잘 모른채 교육한다. 예를 들면 맛집이 있어도 정확하게 도달할 수 있도록 안내가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좋고 나쁨의 흑백논리로 마인드를 규정지어서 자신의 마인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목표지점을 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시작점이 어디있느냐이다. 김 원장이 실시하는 마인드 교육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가고자 하는 지점까지 도달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물은 1급부터 5급까지가 있는데 급수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이처럼 마인드에도 1급부터 5급까지 급수가 있으며 1급에 가까운 마인드를 가진 사람일수록 인생의 가치가 올라간다.
“2급에 해당하는 마인드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성공에서 얻는 성취욕이 행복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성공과 성취욕을 행복이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성취감은 목표를 이루고 목적에 도달할 때 느끼는 것으로 성취감에만 취해서 살면 행복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교류하고 살아야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뛰어난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 다른 마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과 교류하지 못하고 고립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면 스티브 잡스는 혁신적인 제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고 목표를 성취하고 성공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살지는 못했습니다. 애플사를 창립했지만 내부적 갈등이 컸고 결국 회사에서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음의 교류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잡스가 운명한 이후 애플사에는 여전히 직원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묻자 직원들이 말하길, 스티브 잡스의 성격은 괴팍했고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기도 했는데, 회사가 혁신적이었기 때문에 남아 있었다고 답변했습니다.”
김 원장은 성공한 사람들이 ‘내가 뛰어나다는 생각,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교류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3급의 마인드로 현실을 충실하게 살아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나고 여유가 생기면 마음의 급수가 4급, 5급으로 떨어진다고 말한다.
‘이번 주말에는 푹 쉬어야겠어. 이번 방학 때는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 하고 육체의 욕구를 따라가거나 비정상적인 삶으로 흘러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가진 마인드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작은 도전’이라도 새롭게 해보라고 말한다.
“삶의 많은 변화가 오거나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도전하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서 마인드의 방향을 조금만 바꿔놓아도 1년, 2년 후 인생의 큰 변화를 맞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제마인드교육원에서 시행하는 마인드 교육이 사람들에게 무궁무진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설명이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마인드 교육이 필요한지를요. 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람은 마치 가공되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과 같습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이 아프리카에서 많이 나는데, 아프리카 사람들은 이 다이아몬드 원석을 아주 싼 가격에 팝니다.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하면 약 100배로 높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생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올바른 마인드로 바꿔주면 그 사람의 인생도 100배, 200배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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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으로 고통하는 청춘들이여, 마인드를 배워라
잡코리아의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89.8%가 멘토를 필요로 했다. 이 수치는 실제로 대학생들이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실무 경험을 간접 경험하고, 진출하려는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고자 하는 일종의 욕구needs의 반영이다.
김재홍 원장은 대학생들의 멘토로도 활동하면서 학생들이 겪고 있는 취업 문제를 ‘마인드의 변화’에서 해답을 찾으며 명쾌하게 풀어냈다. 그가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설명했다.
“대학생들의 고민 중 하나가 취업입니다. 제가 만난 서울의 한 명문대 여대생이 회사에 원서를 넣었는데 모두 떨어졌습니다. 같은 과의 남학생들은 취업을 했는데, 자기만 취업이 안 됐다고 합니다. 여대생이 취업재수를 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왔어요.
취업이 힘들다고 하지만, 사실 취업이 힘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연봉과 보직에 관한 협상이 힘든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취업이 안 된다면 마인드를 바꿔보라고 말합니다. 보통 계약직으로 회사에 들어가는 것에 자존심을 상해합니다. 하지만 계약직은 경험을 쌓기 위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취준생들이 간과하기 쉽지만 꼭 알아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고졸로 취업을 했건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건 간에 대부분 ‘명예퇴직을 하거나 조기 퇴직을 한다’는 것입니다. 취업 이후에는 다시 사회에 나와서 창업을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학교를 어디에서 나왔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 창업 대비 폐업률이 99%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창업할 때 대박을 꿈꾸지만 실패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취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입니다. 50대 중반에 퇴직을 하고 대부분 창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만 신경을 쓰지 창업을 해야 하는 현실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대생에게 명문대를 나왔지만 계약직에 들어가보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이유는 일을 해보면 새로운 것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그 여대생은 회사의 계약직에 취업을 했습니다. 그녀는 현재 일의 노하우를 쌓고 배우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여대생의 마인드에 변화가 왔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길게 내다보니 앞으로 창업을 해야 하는 때를 준비하며 회사에서 일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자 다니던 회사에서 정직원으로 여대생을 승진시켜주었습니다.
그런데 스카웃을 제의한 회사가 그녀에게 연봉을 꽤 높이 제시한 외국계열 회사라 미련이 생겼습니다. 또 다시 그녀는 저에게 상담을 요청해왔습니다. 하지만 외국계 직장의 좋은 제안에도 불구하고, 명문대를 졸업한 여대생에게는 영어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는 학생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자기계발의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공부할 수 있고, 다양한 방면으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도 훨씬 많이 제공해주었습니다. 여대생은 저와의 상담을 통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습니다.”
고졸로 취업을 타파하는 마인드를 배워라
고등학교를 나온 한 청년은 월급을 별로 받지 못하는 자동차 센터에서 일했다. 마인드 교육을 신청한 그에게 김 원장은 ‘창업을 하라’고 권고했다. 자금도 없고 자신감도 없던 청년은 김 원장의 상담대로 발을 내딛고 자금을 마련하러 다녔다.
“청년은 청년 창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여러 은행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따지기도 하고, 상담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 은행에서 가게 전세금 대출을 알려주면서 창업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본사에서는 가게를 연다니까 인테리어를 할부로 해주었습니다. 수중에 60만 원밖에 없던 그에게 9천만 원짜리 가게가 생겼습니다. 아는 동생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밥만 먹여달라고 해서 직원도 생겼습니다. 청년이 젊으니까 TV 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방송이 여러 편 나오면서 사람들이 그의 가게로 엄청 밀려든 겁니다. 얼마 전에는 빚을 다 갚고 더 큰 곳으로 가게를 이전했습니다. 이 친구는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마인드의 변화로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는 취업난은 심각한데 남들이 가려고 하는 길을 가려니 힘든 것이라며 막히면 돌아가라는 말이 작은 도전처럼 보이더라도 도전하면 새로운 길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마인드의 변화가 취업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 본 포스팅은 2015년 7월호 투머로우 기사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정보는 데일리투머로우(http://www.dailytw.kr/)를 통해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글 | 김민영 기자 사진 | 홍수정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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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에 희망 공을! 공 하나가 축구팀을 10배로 키웠습니다

 

‘1만 원의 기적’의 첫 사연의 주인공이었던 에티오피아 코레아 축구부가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 10개의 유소년 팀으로 늘었습니다. 여러분이 후원해 주신 축구공 하나가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의 꿈을 이루게 해주었습니다. 에티오피아 굿뉴스코 매니저가 보내온 소식을 전합니다. ​다시 한 번 꼬레아 축구부를 힘차게 격려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이 후원해 주신 축구공으로 연습한 지 벌써 3년째입니다. 후원해 주신 축구용품들이 아주 큰 힘이 되어 지금은 300여 명 학생들이 축구부에서 공을 차며 꿈을 키우고 있습니다. 초창기 멤버들은 지금 17살이 되었고, 키도 크고 실력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그 사이 여러 대회에 출전해 경험도 쌓으며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내년에 열리는 18세 유소년 컵 대회 우승을 목표로 한창 훈련 중입니다.

 

 

10개팀에서 300명이 뛰고 있어요
축구부가 시작된 후 가장 기뻤을 때는 작년에 참가한 카톨릭학교 주최의 16세 이하 유소년 컵 대회에서 꼬레아가 우승한 날입니다. 16개 팀이 참가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우리 팀이 우승도 하고, 득점왕에게 주는 MVP상과 감독상도 받아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또 우승팀 상품으로 트레이닝복을 받아 기쁨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이 대회 우승을 계기로 월라이타소도 도시에 16세 이하 팀 2개를 만들었고, 윌라이타소도 도시에서 18킬로미터 떨어진 ‘훔보’라는 작은 도시에도 16세 이하 학생을 모집해서 2개 팀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2개 도시에서 5개의 팀을 더 창단하여 총 10개 팀 300여 명의 학생들이 꼬레아 팀 멤버가 되었습니다.
꼬레아 축구부의 활동이 소문이 나자 여학생들이 찾아와서 여자 축구부도 창설해 달라고 요청하여 머지않아 여자 팀도 창단할 계획입니다. 이제 월라이타소도 도시에서는 ‘꼬레아’ 축구부가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유소년 축구팀이 되었습니다.

 

 

왼손이 불구였던 골키퍼 테스파를 기억하시나요?
꼬레아 팀의 에이스 골키퍼 테스파는 지금도 꼬레아 팀의 골대를 지켜주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키가 부쩍 자라 어른스러워졌습니다. 한국에서 후원해 주신 노란색 골키퍼 복과 장갑은 테스파의 보물 제1호입니다. 왼손이 선천성 기형이라 손을 펼 수 없고, 다른 팀의 골키퍼보다 키가 작은 편이지만 그 누구보다도 순발력이 뛰어나 ‘꼬레아’의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합니다. 양손에 골키퍼 장갑을 끼고 골대 앞을 지킬 때만은 장애도 문제가 안 되고, 친구들의 놀림도 당하지 않기 때문에 테스파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장갑 하나를 가지고 2년 동안 사용하다 보니 지금은 많이 낡고 너덜너덜해졌습니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장갑을 자기만의 보물로 소중히 간직합니다. 테스파에게 내년 유소년 컵 대회에 참가할 때 쓸 수 있도록 튼튼하고 멋진 축구 장갑을 주고 싶습니다.

 

 

축구공과 유니폼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3년째 축구부를 운영하며 제게 꿈이 생겼습니다. 에티오피아 여러 도시에 ‘꼬레아 유소년 팀’을 만들어서 ‘꼬레아’라는 이름으로 유소년 컵 대회를 유치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준비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축구공입니다. 공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연습할 수 있지만, 공이 없으면 축구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습하던 공이 낡아 바람이 빠지면 새 축구공을 지급해 주는데, 그때 학생들이 가장 좋아합니다. 꼬레아 축구부에서 공의 평균 수명은 두 달 정도고, 길게는 석 달가량입니다. 연습하다 가장 속상할 때는 새 공을 지급한 날 공이 터지거나, 지급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운동장 밖으로 튕겨나가 뾰족한 것에 찔려 터질 때입니다.
축구공이 터져도 걱정 없이 마음껏 공을 찰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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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포스팅은 2015년 7월호 투머로우 기사 중 일부입니다. 더 많은 정보는 데일리투머로우(http://www.dailytw.kr/)를 통해 확인하실수 있습니다. 담당 | 김양미 기자 글 | 남필현 굿뉴스코해외봉사 매니저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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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화 동부산대학교 총장

부산 동부산대학교가 최근 전문화된 커리큘럼과 높은 취업률을 앞세워 작지만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학연계 교육체제와 취업준비 프로그램을 확립함으로써 2020년에는 지역발전을 선도하는 강소대학이 되겠다는 계획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는 리더십으로 무장한 류경화 총장이 있다.

류경화 총장_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하루 한 번 학교 홈페이지에 접속해 학생들의 편지를 확인한다. 학교식당 반찬 가짓수를 늘려달라는 사소한 건의부터 학교 환경을 정비해 달라는 부탁까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기쁨이기도 하거니와,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섬김의 가치를 몸소 깨닫게 하는 산 교육
학교 축제가 젊음의 열기를 발산하는 장場이라는 점은 어느 대학이나 비슷할 것이다. 그러나 동부산대학교의 설봉축제 풍경은 여느 대학과는 확연히 다르다. 매년 10월 열리는 이 학교 축제 첫날, 캠퍼스 잔디운동장에 모인 동부산대 학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분주해진다. 한쪽에서는 풍선을 불어 풍선아치를 만드는가 하면, 그 반대쪽에서는 의자 세팅작업이 한창이다. 무대 주변에서는 예비 군인인 이 학교 부사관과 남녀 예도단禮刀團이 멋진 제복을 차려 입고 ‘받들어 칼’ 제식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혹 귀한 손님이라도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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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그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주고 축하해 주었지’ 하고 말이죠.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작은 관심으로부터 행복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학생들 역시 합동결혼식의 수혜자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는 말처럼, 행복해하는 이탈주민들을 보며 ‘나도 크든 작든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에 함께 행복해진다는 것. 그렇게 형성된 마인드는 졸업 후 직장생활에 꼭 필요한, 주변사람을 배려하는 자세와 원만한 대인관계로 이어진다는 게 류 총장의 설명이다. 합동결혼식을 준비했던 경험을 적은 자기소개서가 높이 평가되어 대기업에 입사한 학생들도 많다고 한다. 합동결혼식은 단순한 자선활동을 넘어 학생들에게 배려와 섬김의 가치를 몸소 깨닫게 하는 류 총장만의 살아있는 인성 교육인 셈이다.

 

 

학생들의 진로 놓고 자정까지 마라톤 회의
지난 2013년 12월 동부산대 8대 총장이 된 류경화 총장은 취임 당시부터 화제를 낳았다. 류 총장은 동부산대 37년 역사상 첫 여성 총장이다. 그녀의 남편은 부산교육대학교 5대 총장(2009~2013년)을 역임한 김상용 박사다. 부부가 함께 평교수로 출발해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의 총장에까지 오른 사례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김상용 박사는 류경화 총장에게 있어 먼저 대학 총장을 지내면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전해주는, 훌륭한 롤모델이기도 하다.
“학교를 이끌다 보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난관이나 문제에 부딪힐 때도 많죠. 그럴 때면 남편도 선임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등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죠. 남편은 항상 기본과 원칙을 중시하라고 강조하는데, 그 말을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고교 시절 진로를 생각하다 ‘건전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로마 시인 유베날리스의 말에 감명을 받고 체육학과 진학을 결심했다는 류 총장.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지만, 스포츠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도 생각이 미쳤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에는 미국 스포츠아카데미에서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한 뒤, 교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30년 넘게 동부산대 유아교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그러다 보니 부산지역 교육청 장학사, 유치원 및 어린이집 원장·원감·교사 중에는 류 총장의 제자가 많단다.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은 일선 교육현장에서 또 다른 학생들을 가르칠 것이기에, 교수시절 제자들에게 교사가 갖춰야 할 올바른 마음가짐을 심어주기 위해 늘 애썼다는 류경화 총장. 대학의 경영자가 된 지금은 대학 경쟁력 강화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대학진학 인구 감소로 인해 교육부는 정원감축, 학과 통폐합 등 대학 구조조정에 한창이다. 이에 류 총장을 중심으로 한 동부산대 교수진들은 ‘진실된 인재’ ‘창의적 인재’ ‘전문적 인재’를 목표로 삼고 연일 대책회의를 여는 등 졸업생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교수와 학생이 결연을 맺어 취업과 진로에 대한 조언을 주고받는 멘토-멘티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자격증반 및 원어민 영어회화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학생 한 명 한 명의 진로를 놓고 교수님들과 고민하며 회의를 하다 보면, 자정을 훌쩍 넘길 때도 많습니다.”

 

기업도 대학도 끊임없는 혁신이 요구되는 시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5~29세 청년 435만 명 중 112만 명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청년들의 고민이 ‘취업할 곳이 없다’라면, 기업들의 고민은 ‘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것. 대학에서는 나름 고심하며 커리큘럼을 세워 열심히 가르치지만, 그 내용이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이나 역량과는 여러모로 동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는 애써 뽑은 인재들에게 현장에 필요한 실무를 처음부터 새로 가르쳐야 하고, 이는 고스란히 시간과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아는 류경화 총장은 동부산대가 양성하고자 하는 인재상을 ‘졸업 후 곧바로 현장에 뛰어들어 일할 수 있는 인재’로 새롭게 설정했다. 산업현장에서 다년간 근무한 베테랑들을 교수로 초빙해 국가직무능력NCS 중심 교육과정을 개발해 운영함으로써 산학이 연계된 교육체제를 완성하겠다는 목표다.
“기업처럼 대학도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체질개선이 요구되는 시대가 온 거지요. 저희 동부산대는 비교적 규모가 작지만, 그만큼 의사결정이 신속해서 변화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부산대학교에는 매직엔터테인먼트과, 해양산업잠수과, 장례행정복지과 등 다른 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학과들이 여럿 존재한다. 보다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시대의 요구에 딱 맞는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해 전문대학 특성화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결과다. 전국적으로도 이런 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동부산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지난 2008년 매직엔터테인먼트과 신설을 주도한 것도 류 총장이다. 드라마나 가요처럼 마술이 한류를 선도하는 문화콘텐츠가 될 것으로 판단해 시작한 일이었다.
“물론 고생이 많았지요. 마술에 재능 있는 학생을 찾아 전국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학생은 마술을 좋아해서 그 쪽으로 진로를 정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도 제 몫이었습니다. 실력 있는 마술사를 초빙하기 위해 일본에도 다녀왔습니다.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마술사들은 힘들여 연구하고 터득한 노하우를 좀처럼 공개하지 않거든요.”
그런 노력 끝에 설립된 매직엔터테인먼트는 현재 세계 유일의 마술 전문학과로 차츰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반갑게도 이 학과 출신 마술사인 유호진, 안하림 등이 마술올림픽, 월드매직세미나 등 세계적인 마술대회에서 최고상을 휩쓸며, 자신과 모교의 이름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세상과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총장 임기가 끝나는 올해 12월 7일까지 약 6개월을 남겨놓은 지금, 학교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한 류경화 총장의 노력은 차츰 결실을 맺고 있다. 지역 전문대학 중 유지취업률(졸업자가 취업 후 일정기간 뒤에도 그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는지를 토대로 조사한 취업률)에서 2012~2013년 1위를 기록하는 등 상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문현금융산업단지·정관산업단지 등 주변 지역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현장의 요구에 맞는 맞춤형 학과를 개설함으로써 산학연계 교육체제 마련에 기여하겠다고 한다.
“중국 고전인 <중용中庸> 23편에 보면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총장으로서 저의 경영철학이기도 합니다. 꿈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도, 누가 대신 이뤄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고 한걸음씩 부지런히 움직여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의 ‘마부위침磨斧爲針’ 또한 류 총장이 즐겨 인용하는 고사성어다. 어느 분야이건 최고의 전문가를 만나보면 하나같이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며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꾸준한 노력으로 정진해 온 그들의 삶을 설명하기에 이만큼 좋은 고사성어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남들이 걸었던 길을 답습하는 것으로는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청춘은 너무도 아까운 시기지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틈날 때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학생들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대화하는 시간도 갖고요.”
반듯한 인성 위에 창의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현장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실무능력까지 갖춘 ‘진짜 프로’를 양성하고 싶다는 류경화 총장. 그녀의 경영철학을 들어보니 동부산대학교가 작지만 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주목받는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글 | 김성훈 기자   사진 | 홍수정 기자   디자인 | 김진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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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정보과잉시대의 커뮤니케이터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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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신문·방송은 물론 인터넷·스마트폰·SNS 등 뉴 미디어로부터 연일 엄청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복잡한 정보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 한 장에 전하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가 각광받고 있다. 국내 첫 인포그래픽 업체인 ‘바이스버사’의 두 청년 대표가 말하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의 세계!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이미지 한 장
안녕하세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김묘영, 정다은입니다. 여러분은 혹 인포그래픽infographic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인포그래픽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든 그렇지 않든, 여러분은 이미 인포그래픽을 여러 번 접해 보셨을 것이고 앞으로 접할 기회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인포그래픽이란 말 그대로 ‘정보information’와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로, 대량의 정보를 그래프·차트·이미지·로고·일러스트 등을 활용해 일목요연하고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이미지 매체를 말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붙어 있는 노선안내도, 선거 개표방송에 나오는 후보별·정당별·지역별 지지도를 분석해 보여주는 그래프 등도 넓은 의미의 인포그래픽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인포그래픽의 중요성은 왜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을까요? 오늘날은 책·신문·방송은 물론 인터넷과 스마트폰 붐을 타고 떠오른 페이스북·트위터·유투브·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시대입니다. 최근 2~3년간 만들어진 정보의 양은 인류가 과거 30만 년 동안 만든 정보의 양과 비슷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지요? 이같은 엄청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고 가공해 시각화visualize하고, 그 정보들 간의 관계나 의미, 패턴을 파악해서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이 인포그래픽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출산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지요? 이대로 가면 2050년경에는 대한민국 인구 700만 명이 감소하고, 2110년에는 전체인구가 2,500~3,000만 명 정도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약 400년 뒤에는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위 내용에서 키워드는 바로 ‘대한민국’과 ‘인구’입니다.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태극기나 한반도 지도 이미지가 주로 검색됩니다. 인구는 사람으로 대체해서 검색하면 다양한 이미지와 아이콘이 나옵니다. 이제는 이 둘을 결합하여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태극무늬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으로 인구 감소를 시각화하면 됩니다(다음 쪽 그림 참조). 이 인포그래픽은 간단하면서도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의 심각성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인포그래픽은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할 뿐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치나 데이터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이미지로 되어 있어 뇌리에 오래 남고 SNS를 통해서도 빠르게 확산되는 효율적인 매체입니다.
 

인포그래픽, 모바일시대에 더욱 더 각광받는 매체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저희가 창업을 결심한 것도 이런 인포그래픽의 장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인포그래픽이 기업이나 브랜드의 홍보·마케팅 수단, 언론 및 방송의 보도자료 등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얼마 안 있어 인포그래픽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저희 두 사람은 드디어 2010년 9월 1일, 노트북 한 대와 돈 50만 원씩을 갖고 ‘바이스버사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됩니다. 바이스버사Vice Versa란 ‘거꾸로, 반대로’라는 뜻의 영어단어로,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항상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연구하겠다는 크리에이터creator로서의 신념을 담은 이름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하고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진행해야지’ 하는 포부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을 살려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트위터 친구들이나 함께 사무실을 쓰는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작업하면 그럭저럭 회사를 꾸려나갈 정도는 충분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국내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포그래픽은 단숨에 주목받는 정보전달과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대신 걸어다니면서 SNS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오늘날, 간단명료한 이미지로 구성된 인포그래픽은 쉽게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 뇌의 부담을 줄여주거든요.

저희는 저희의 인포그래픽들을 회사 홈페이지v-vdesign.com와 트위터, 페이스북에 올려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셈이었지요. 그런데 그 인포그래픽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세대재단, 문화체육관광부, SK브로드밴드, 아모레 퍼시픽, GS칼텍스, KBS, 한국관광공사 등 대기업이나 정부기관, 공공단체와 함께 일한 지 어느덧 6년째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인포그래픽 어워드에서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관광공사의 감사패를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희를 ‘춤추게’ 하는 건 역시 클라이언트의 찬사입니다. ‘역시 바이스버사야!’ ‘그 복잡하던 정보가 쏙 들어오네’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임팩트 있는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비결은?
인포그래픽을 주제로 학교나 기업, 단체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을까요?’입니다. 인포그래픽도 일종의 디자인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는 뛰어난 디자인 스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데이터를 해석하여 메시지를 구성하는 ‘기획능력’입니다.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려면 일러스트나 포토샵 등 이미지 제작·편집 프로그램 못지않게 데이터 분석·통계 프로그램인 엑셀을 다루는 데 능숙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구조화시켜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추기를 권합니다. 정치·문화·경제·IT·브랜드·일상생활 등 세상 모든 것이 인포그래픽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주제로 제작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인터넷 검색·자료 수집·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상식을 쌓아두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요.

최신 토픽이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문도 두 개 이상씩을 구독하고 있으며, 바빠서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스마트폰으로라도 반드시 뉴스를 확인하고 좋은 내용은 직원들과 공유한답니다. 길을 걷다가도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이미지나 풍경이 눈에 띄면 놓칠세라 스마트폰으로 찍어 둡니다. 덕분에 32기가나 되는 저장공간도 부족할 지경이지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위트도 이런 성실한 노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나오는 것입니다.

또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능력으로는 대범함과 세심함이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한 장에 담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생각보다 매우 적습니다. 모든 데이터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검토한 뒤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내용을 인포그래픽에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내는 통찰력과, 줄기를 잡아내되 곁가지는 과감히 잘라내는 ‘선택과 집중의 묘’가 필수입니다.

그리고 세심함, 즉 디테일에 강하면 더욱 더 완성도 높은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 몇십 초 만에 스윽 훑어보는 간단한 인포그래픽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인포그래픽에 들어가는 로고나 아이콘, 사진, 폰트 등에는 엄연히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상업적 용도로도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또 정확함이 생명인 인포그래픽에서 오탈자나 틀린 정보가 있다면 곤란하겠지요? 저희를 믿고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그래서 완성작이 나온 뒤에도 여러 번 출력해 체크합니다.

퀄리티 높은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마지막 요소로 팀워크를 꼽고 싶습니다. 저희 둘로 시작한 바이스버사 스튜디오도 어느덧 대학생 인턴을 포함해 8명으로 식구가 늘어났습니다. 인원이 늘어나면 더 크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겠지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거치는 동안 결과물의 완성도도 높아지게 마련이고요. 그 과정에서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랍니다. 

 

늘 새롭지 못하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저희는 대학에서 인터랙션interaction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인터랙션이란 영어로는 ‘상호작용’이라는 의미인데요. 인간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디자인 분야입니다. 평소 여러분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내비게이션의 인터페이스를 생각해 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입니다.

인터랙션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직관성입니다. 누가 봐도 ‘아, 이 기호는 이 뜻이구나’ 하고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점 하나를 찍고, 선 하나를 긋고, 색 하나를 칠하더라도 명확하고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가령 ‘남성의 뇌 vs. 여성의 뇌, 어떻게 다를까?’를 주제로 인포그래픽을 만든다고 해 봅시다. 흔히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남자를 빨간색, 여자를 파란색으로 표현한다면 보는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포그래픽에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색을 활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다면 빨간색을, 삼성이 클라이언트라면 파란색을 주로 써야 하겠지요? 이처럼 인포그래픽은 철저히 사용자를 배려하는 마인드에서 만들어집니다.

보통 대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패션이면 패션, 전자제품이면 전자제품 식으로 한 가지 분야의 작업만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는 다릅니다. 항상 다루는 주제가 바뀌고,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이나 플랫폼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변화를 즐기고 도전하는 마인드를 배우고 싶은 이에게는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지난해 저희는 GS SHOP의 회사소개서를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올해 또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점을 완전히 달리해 새로 지은 GS SHOP 신사옥 사진을 찍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요즘 예전에 저희가 만들었던 인포그래픽들을 틈틈이 리뉴얼하는 중입니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열심히, 잘 만들었다’ 싶던 것들도 지금 와서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족한 점이 눈에 띄어 낯이 살짝 붉어지곤 합니다. 항상 새로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하루하루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저희 같은 크리에이터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저희 바이스버사만의 차별화전략이자 창의성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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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cross America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미국미술 3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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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국립중앙박물관
문의  1661-2440
가격  성인 12,000원, 중.고생 10,000원, 초등학생 8,000원
  국립중앙박물관은 기획특별전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를 통해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등 미국 현대미술의 슈퍼스타들과 존 싱글턴 코플리, 윈슬로 호머, 토마스 에이킨스 등 미국인들이 사랑했던 거장들의 대표적 작품들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미국미술 300년의 역사를 소개하는 국내 첫 대규모 전시이며 워싱턴에서 재키까지, 신대륙 발견부터 오늘날의 미국에 이르는 미국역사를 담아 미국미술사의 전 과정을 보여준다. 168점에 이르는 회화, 공예품들은 규모면에서 압도적이며 미국 사람들, 동부에서 서부로, 삶과 일상의 이미지, 세계로 향한 미국, 미국의 근대, 1945년 이후의 미국미술 등 6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미국의 장인들과 디자이너들의 높은 예술적 수준을 보여주며, 미국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미술이 지녔던 역할을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은 국립중앙박물관과 미국의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필라델피아미술관, 휴스턴미술관, 테라 미국미술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하였다. 테라 미국미술재단은 이번 전시에 주요한 후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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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 조형의 세계 <세계팝업아트>

입체 조형의 세계 <세계팝업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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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제1,2전시장
문의  02-730-4360
가격  성인 12,000원 / 청소년·어린이 10,000원
  세계팝업아트전은 세계 최초로 평면 일러스트나 디자인을 팝업 기술로 감동을 극대화한 3차원의 시각예술인 팝업아트를 새로운 미술의 영역으로 규명하고 팝업기법을 건축, 인테리어, 비주얼 머천다이징, 광고 등 다양한 산업과 접목시켜 산업 디자인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 넣은 팝업아트작품을 한국에 최초로 소개한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디자인과 미술에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남녀노소가 관람하면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3차원의 조형물이 나타나 책의 스토리가 영화처럼 시각화되는 3D 페이퍼 팝아트관, 건축모형, 모빌 등 팝업을 순수 미술의 영역까지 확장시킨 작품들이 전시된 팝업 인 파인 아트관,  다양한 디자인 산업에 응용된 작품이 전시되는 팝업 인 어플라이드 아트관의 3가지 테마로 전시된다. 특히 팝업 인 어플라이드 아트관에서는 벤자 하니, 마틸다니베, 필립위제 등 세계팝업아트의 거장들이 에르메스, 샤넬, 루이까또즈, 불가리 등 세계 명품브랜드와 협업한 작업을 볼 수 있다. 페이퍼엔지니어링과 북아트가 접목된 팝업북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다양한 팝업북 및 컬렉터들의 희귀 소장본 및 초판본, 한정본을 특별 전시한다. 브루스 포스터와 벤자하니 등 세계적 팝업 작가들이 직접 지도하는 ‘팝업디자인워크샵과 작가와의 대화 등 다양한 전시연계 교육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소통과 창작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하니 놓쳐서는 안될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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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kina Faso]내 친구, 내 언니, 내 엄마 안마리

[Brukina Faso]내 친구, 내 언니, 내 엄마 안마리

내 친구, 내 언니, 내 엄마 안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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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키나파소 사람들이 ‘밀’이라고 부르는 식물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같이 찧었다. 한국의 ‘조’와 비슷한 식물인데, 껍질을 벗겨서 밭에 심는다.나중에 현지 음식 ‘또’를 만드는 데 쓴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부르키나파소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50도를 넘나드는 기온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몸이 반쪽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나라가 어떻게 내 마음에 깊숙이 자리잡았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부르키나파소가 무지 덥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해외봉사를 왔다. 비행기로 가나에 도착해서 사흘을 머문 후 버스를 타고 부르키나파소로 왔다. 부르키나파소는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생동감 있는 가나에 비해 부드러운 황토 빛깔로 조용하고 서정적이었다. 그리고 많이 걱정했던 기후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덥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오기 전에 친구와 함께 한 찜질방 예행연습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이곳의 기후에 잘 적응해 갔다.

 

이곳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 ‘이곳은 아프리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위생관념이다. 이곳 사람들은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세제나 비누를 엄청 많이 사용한다. 문제는, 제대로 씻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할 때 헹구는 물이 뿌옇게 흐려져도 갈지 않고, 빨래를 할 때는 한두 번 헹구면 끝난다. 비누칠을 하면 그것으로 깨끗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헹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더러운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데도 가만히 놔둔다. 그러나 샤워는 하루에 적어도 두세 번은 해야 한다. 이런 위생관념 말고는 큰 문화충격은 없다.

 

이곳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함께 생활하며 이곳 문화를 가르쳐 주고 한국 문화도 배울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굿뉴스코 부르키나파소 본부에는 본부장님 가족 4명, 현지인 3명, 그리고 가나와 토고에서 온 대학생 2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현지인 3명과 대학생 2명은 모두 남학생이어서 그들과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가서 친구를 사귀자니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친구 없이 지내자니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내게도 현지인 룸메이트가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전달되었을까, 2월 말에 ‘안마리’라는 언니와 함께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같은 언니, 안마리. 그녀의 첫인상은 조용하면서 왠지 어두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힘든 일이 있어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었다. 여하튼 나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룸메이트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언니가 말수도 별로 없고 표정도 어두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간단한 의사소통도 사전 없이는 하지 못했지만, 같이 방을 쓰고 같이 활동하면서 언니의 유쾌한 본능을 보았다. 한번씩 내게 던지는 말투나 행동에 나는 자지러지기 일쑤였다. 조용히 지내다가도 장난기가 발동하면 한동안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언니의 관심과 배려는 타지 생활을 하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지 않는가. 언니와 나 사이에도 많은 오해와 엇갈림이 있었다. 나는 자주 언니의 말투 때문에 토라졌다. 부탁조가 아닌 명령조의 말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언니라지만 나를 아이 다루듯 혼내거나 말할 때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대화를 피하거나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언니는 ‘이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내게 하는 건데, 나는 그 마음을 보지 못하고 말투만 보니까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럴 때면 언니는 내가 화가 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다가와 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빨리 하지 않을 때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면 혼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날 이끌어 준 언니, 그렇게 언니는 내게 언니이자 엄마 같은 존재가 되었다.

4월 말에는 언니와 함께 ‘코나’라는 시골 마을에 가서 2주간 지냈다. 사람들이 흙과 짚으로 만든 집에 살며 가축을 기르고 우물물을 길어 먹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코나. 달과 수많은 별들이 전깃불 대신 우리를 비춰 주었고, 자연과 아기 돼지 3형제가 수세식 변기를 대신해 주었다. 그곳에서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으로 가까워졌다. 언니는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괄량이 삼총사의 리더로 마을을 누비며 일으켰던 재미난 사건들부터 ‘가에땅’이라는 7살 아들을 갖게 된, 하기 힘든 이야기까지. 코나에서 보낸 2주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마음을 나눈 값진 시간들이었다.

 

특히 가에땅 이야기를 할 땐 생각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피(내 이름), 난 이제야 세상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았어. 전엔 많은 돈을 벌어서 형편이 좋아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날 사랑한다는 남자가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줄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 내가 가에땅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나를 떠났어. 진정으로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행복해지기 위해 달려갔던 나의 결말은 미혼모였어. 나는 형편이 바뀌어야 행복한 줄 알았어. 근데 내가 깨닫게 된 게 뭔 줄 아니? 진정한 행복은 형편이 바뀌어야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어야 된다는 거야. 형편만 생각하면 난 비참한 여자야. 하지만 내 마음이 바뀌니까 그렇지 않아. 세상에 자기가 낳은 자식과 함께 살지 못하는 불행한 엄마가 얼마나 많니. 자식이 병을 지녀 고통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고. 나는 건강하고 밝은 내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행복한 엄마잖아. 안 그래?”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했던 나날들, 남을 배려하거나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나를 앞세웠던 삶, 나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었다. 내게는 감사할 조건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프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병원이 있고,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아프리카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도 많은 걸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때로는 친구처럼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언니로서 나를 이끌어주는 안마리 언니.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르키나파소를 생각하면 내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안마리 언니가 그냥 떠오를 것 같다.

 

재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부르키나파소가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다. 50도를 넘나드는 기온 때문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려 더위와 사투를 벌이다 몸이 반쪽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나라가 어떻게 내 마음에 깊숙이 자리잡았는지 아직까지도 의문이다. 부르키나파소가 무지 덥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해외봉사를 왔다. 비행기로 가나에 도착해서 사흘을 머문 후 버스를 타고 부르키나파소로 왔다. 부르키나파소는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닌 생동감 있는 가나에 비해 부드러운 황토 빛깔로 조용하고 서정적이었다. 그리고 많이 걱정했던 기후는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덥지 않았다. 어쩌면 이곳에 오기 전에 친구와 함께 한 찜질방 예행연습이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이곳의 기후에 잘 적응해 갔다.

 

이곳에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면 ‘이곳은 아프리카니까’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바로 위생관념이다. 이곳 사람들은 설거지나 빨래를 할 때 세제나 비누를 엄청 많이 사용한다. 문제는, 제대로 씻어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거지를 할 때 헹구는 물이 뿌옇게 흐려져도 갈지 않고, 빨래를 할 때는 한두 번 헹구면 끝난다. 비누칠을 하면 그것으로 깨끗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헹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 흙바닥에서 더러운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데도 가만히 놔둔다. 그러나 샤워는 하루에 적어도 두세 번은 해야 한다. 이런 위생관념 말고는 큰 문화충격은 없다.

 

이곳 생활에 적응해 갈 무렵,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함께 생활하며 이곳 문화를 가르쳐 주고 한국 문화도 배울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머물고 있는 굿뉴스코 부르키나파소 본부에는 본부장님 가족 4명, 현지인 3명, 그리고 가나와 토고에서 온 대학생 2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현지인 3명과 대학생 2명은 모두 남학생이어서 그들과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가서 친구를 사귀자니 말이 안 되고, 그렇다고 친구 없이 지내자니 너무 외로웠다. 그래서 내게도 현지인 룸메이트가 생기길 간절히 바랐다. 내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전달되었을까, 2월 말에 ‘안마리’라는 언니와 함께 1년 동안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 같은 언니, 안마리. 그녀의 첫인상은 조용하면서 왠지 어두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힘든 일이 있어서 우리와 함께 살게 된 것이었다. 여하튼 나에게는 그토록 바라던 룸메이트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언니가 말수도 별로 없고 표정도 어두워서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같이 생활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간단한 의사소통도 사전 없이는 하지 못했지만, 같이 방을 쓰고 같이 활동하면서 언니의 유쾌한 본능을 보았다. 한번씩 내게 던지는 말투나 행동에 나는 자지러지기 일쑤였다. 조용히 지내다가도 장난기가 발동하면 한동안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언니의 관심과 배려는 타지 생활을 하는 내게 큰 힘이 되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의사소통도 자유롭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지 않는가. 언니와 나 사이에도 많은 오해와 엇갈림이 있었다. 나는 자주 언니의 말투 때문에 토라졌다. 부탁조가 아닌 명령조의 말투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언니라지만 나를 아이 다루듯 혼내거나 말할 때면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럴 때면 나는 대화를 피하거나 혼자 있을 때가 많았다.

 언니는 ‘이 말을 할까 말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내게 하는 건데, 나는 그 마음을 보지 못하고 말투만 보니까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럴 때면 언니는 내가 화가 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다가와 주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빨리 하지 않을 때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면 혼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하면서 날 이끌어 준 언니, 그렇게 언니는 내게 언니이자 엄마 같은 존재가 되었다.

 4월 말에는 언니와 함께 ‘코나’라는 시골 마을에 가서 2주간 지냈다. 사람들이 흙과 짚으로 만든 집에 살며 가축을 기르고 우물물을 길어 먹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코나. 달과 수많은 별들이 전깃불 대신 우리를 비춰 주었고, 자연과 아기 돼지 3형제가 수세식 변기를 대신해 주었다. 그곳에서 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으로 가까워졌다. 언니는 소아마비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괄량이 삼총사의 리더로 마을을 누비며 일으켰던 재미난 사건들부터 ‘가에땅’이라는 7살 아들을 갖게 된, 하기 힘든 이야기까지. 코나에서 보낸 2주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마음을 나눈 값진 시간들이었다.

 특히 가에땅 이야기를 할 땐 생각이 많이 되었다.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피(내 이름), 난 이제야 세상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찾았어. 전엔 많은 돈을 벌어서 형편이 좋아지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어. 그리고 날 사랑한다는 남자가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줄 줄 알았어. 근데 아니었어. 내가 가에땅을 갖게 되었을 때 그는 나를 떠났어. 진정으로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행복해지기 위해 달려갔던 나의 결말은 미혼모였어. 나는 형편이 바뀌어야 행복한 줄 알았어. 근데 내가 깨닫게 된 게 뭔 줄 아니? 진정한 행복은 형편이 바뀌어야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어야 된다는 거야. 형편만 생각하면 난 비참한 여자야. 하지만 내 마음이 바뀌니까 그렇지 않아. 세상에 자기가 낳은 자식과 함께 살지 못하는 불행한 엄마가 얼마나 많니. 자식이 병을 지녀 고통하는 부모가 얼마나 많고. 나는 건강하고 밝은 내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행복한 엄마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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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의 지난 삶을 돌아보았다. 부모님과 함께 살고 부족함 없이 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했던 나날들, 남을 배려하거나 그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나를 앞세웠던 삶, 나는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이었다. 내게는 감사할 조건이 얼마나 많았던가! 아프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병원이 있고, 내 삶의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부모님이 계시고, 하루 세끼 굶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고…. 아프리카에서 나는 내가 너무나도 많은 걸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언니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때로는 친구처럼 웃고 장난치고, 때로는 언니로서 나를 이끌어주는 안마리 언니. 한국으로 돌아가서 부르키나파소를 생각하면 내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안마리 언니가 그냥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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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ana]이색적인 아프리카 문화 속에 감추어진 행복

[Ghana]이색적인 아프리카 문화 속에 감추어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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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가나의 문화 속에 젖어든 나를 본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행복
가나에 오기 전에는 미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발달된 선진문화를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숟가락보다 손가락으로 음식을 먹는 것이 편하고 정겹다. 일 년이라는 봉사활동을 통해 가나의 전통문화와 가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배워 갈 수 있어서 더 없이 행복하다.

아프리카가 주는 행복을 맛보려고

아프리카에 꼭 한번 가고 싶었다. 덥고 물도 부족하고 모기도 많고 질병도 많아서 가기 꺼려지는 곳이었지만, 아프리카에 다녀온 굿뉴스코 해외봉사단원들의 입에서 한결같이 “행복했다” “또 가고 싶다”는 말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듣고 난 뒤부터다. 나도 그들이 말하는 행복을 맛보고 싶어서 아프리카 해외봉사활동을 지원했고 마침내 스물한 살이 된 2010년 1월 가나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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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갈망하던 가나. 그러나 가나에서 행복을 맛보기까지는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무더운 날씨,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낯선 음식들, 언어 문제 등 가나와 한국의 문화차이가 가나의 한국의 거리만큼이나 컸으므로.

 왼손이 뭐 어때서?

우선,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에 대한 견해차이다. 가나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왼손으로 뒤처리를 하기 때문에 왼손을 더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느 한국인들이 그렇듯 내가 볼 때는 왼손이나 오른손이나 똑같은 손이다. ‘똑같이 씻어서 둘 다 깨끗한데 왼손이 뭐 어때서?’ 나는 왼손, 오른손을 가리지 않고 음식을 집어 먹기도 하고 왼손으로 인사를 청하기도 하고 왼손으로 물건을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면 가나 사람들은 놀라고 당황하거나 심지어 나를 꾸중하기도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또 20년 동안 몸에 베인 습관을 하루아침에 고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일 년이 거의 다 된 지금 나의 왼손은 꼭 써야할 그때를 제외하고는 한 곁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숟가락 VS 손가락

가나에서는 음식을 주로 맨손으로 떠먹는다. 밥이나 콩요리는 숟가락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반쿠, 푸푸, 아플레 등 대부분의 가나 전통음식은 맨손을 사용한다. 가나에 처음 와서 맨손으로 반쿠를 떠먹는 사람들을 보고 지저분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막 요리해서 나온 음식은 너무 뜨거워서 먹기 힘들 정도였다. 나는 그들에게 숟가락을 쓰면 깨끗하고 뜨거워도 잘 먹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래서 보란 듯이 숟가락을 사용했다. 한 친구가 “왜 숟가락을 써? 손으로 먹는 게 더 맛있어”라고 했다. ‘손가락으로 먹는 것이 더 맛있다고? 말도 안 돼!’ 하는 생각으로 계속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었다. 그러자 다시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 손가락이 몇 개인 줄 알아? 5개지? S, P, O, O, N! 가나에서는 손가락이 숟가락이야.”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나도 손으로 음식을 떠먹기 시작했다. 아! 나중에야 느낀 것이지만 숟가락으로 먹을 때보다 손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훨씬 맛있다. 지금은 반쿠나 푸푸를 먹을 때 숟가락으로 먹으면 불편하고 어색하다.

 가르칠 것 < 배울 것

시간이 지나면서 가나에서 배울 것이 참 많음을 느꼈다.

가나 사람들은 인사를 참 잘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예 의바른 나라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나야말로 예의바른 인사문화를 가진 나라다. 매일 만나면서도 항상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길에서 처음 마주치는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아마 한국에서 길을 가다 지나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받기 십상일 것이다. 누구와도 편안하게 인사를 나누듯이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인다.

가나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집안일을 곧잘 한다. 대학생인 내가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밥과 계란프라이, 라면 끓이기 정도인데 이곳에서는 열두 살 정도면 웬만한 요리는 다 할 줄 알고 설거지와 빨래도 능숙하게 해 낸다. 아이들이 집안일을 함께하며 집안 사정을 살피는 등 책임감 있게 자라는 것이 참 보기 좋다. ‘나는 그 나이 때 뭘 했더라?’ 생각해 보니 과자 사달라고 조르고 만화영화 보면서 놀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공부 핑계로 집안일은 아예 손도 대지 않았는데…. 여기서 지내는 동안 엄마 생각이 많이 났다.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가나에서 얻은 행복

가나에 오기 전에는 미개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발달된 선진문화를 가르쳐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 때문에 마찰도 빚고 갈등도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내 상식과 생활 방식을 버리고 가나의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니까 살기가 편해졌다. 또 가나 사람들과 좀 더 친밀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일 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가나의 전통문화와 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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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stralia] 나만의 호주 보고서_나의 호주, 나의 시드니!

[Australia] 나만의 호주 보고서_나의 호주, 나의 시드니!

나만의 호주 보고서
나의 호주, 나의 시드니!
첫 해외생활의 기대감을 가지고 도착한 호주 시드니. 캥거루가 뛰어놀고 코알라가 늘어지게 자고 있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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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의 상징 오페라 하우스

봉사활동 때문에 관광을 다닐 여가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호주의 볼거리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호주에서 첫 번째로 구경을 간 곳은 그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였다. 가서 보니 왜 그렇게 오페라 하우스를 이야기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채 살 모양으로 펼쳐져 있는 건축물이 흡사 오렌지 하나를 잘라서 펼쳐 놓은 모양과도 같았다. 특히 야간의 조명은 오페라 하우스의 아름다운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심지어는 화장실 하나까지도 예술 공간이었다. 오페라 하우스를 만든 사람의 미적 감각에 찬사를 보냈다. 이런 거대한 예술작품을 내 눈으로 직접 보다니!

 

호주 식 된장의 기묘한 맛

베지마이트! 나를 괴롭게 했던 호주의 맛이다. 베지마이트는 빵에 발라먹는 잼과 같은 것으로, 호주 식 된장이라고 하였다. 나는 별 생각 없이 베지마이트를 빵에 듬뿍 발라 한 입 베어 물었다. 앗! 곧바로 입안의 음식을 다 쏟아낼 뻔 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맛에 당황하는 나에게 호주 사람들은 맛있는 잼이라며 계속 권했다. 호주의 음식은 대체로 너무 달거나 너무 느끼해서 내게 한국 음식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 때문에 몇 달간 고생은 했지만 이것 또한 해외활동에서나 경험해 볼 수 있는 추억이라 할 수 있겠다.

  여유와 거만이 흐르는 호주 사람들

호주에 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한 번은 한 호주인에게 용기를 내어 “나는 당신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좋다고 허락해 주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는데 갑자기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멀뚱히 웃고만 있어야 했다. 결국 그 사람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자리를 떴다. 또 한 번은 역시나 호주인 할머니에게 나를 소개하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할머니가 내게 뭐라고 하셨지만 나는 못 알아듣고 계속 얘기를 했다. 나중에 다른 봉사단원이 얘기해 주기를 그 할머니 왈, “그 영어 실력으로는 호주에서 말 할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는 것이다. 부끄럽기도 하고 여유와 거만이 흐르는 호주인들이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여유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호주 사람들에게는 ‘빨리 빨리’에 젖어 사는 우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다. 예를 들어 인터넷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에서는 고장 신고를 하고 한 두 시간 내지는 신고 당일에 꼭 해결해 달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신고를 하고 2, 3일은 기본으로 기다린다. 그러니 서로 짜증낼 일도 없고 사람들끼리 부대낄 일도 거의 없다.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던 나였는데….

다양한 봉사활동 프로그램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카데미 교실을 짓는 일이다. 처음에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다루지 못하는 연장이 없을 정도로 숙련된 기술자가 되었다. ‘지금 이 일을 마치면 다음에는 어떤 일이 있고, 그 다음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미리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일하는 법을 많이 배웠다. 또 호주 현지인들과 함께 작업을 하며 되든 안 되든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가 많이 늘었다. 공부로는 안 되던 영어가 일하면서는 뻥 뚫린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내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에서 건축 봉사활동은 내게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전에는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던 나였는데….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호주를 추천합니다

호주는 많은 돈이 없어도 안락한 삶을 살 수 있고 엄격한 법 제도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깨끗한 자연환경과 천연자원으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래서 흔히들 호주는 여행하기에 좋은 나라라고 한다. 또한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 이민 가서 살기에 가장 좋은 나라로 추천한다.

그러나 나는 또 다른 이유로 호주에서 살아 볼 것을 권한다. 새로운 음식과 문화와 사람들의 맛을 보기에 지구반대편 호주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통해 신의 손길을 느끼고 한없이 작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에 호주만한 곳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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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u]아야꾸쵸에서 만난 할머니, 나의 할머니

[Peru]아야꾸쵸에서 만난 할머니, 나의 할머니

나를 이끌어 갈 원동력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감사
어떻게 일 년을 살까 했는데 벌써 돌아갈 날이 되었다. 광활한 페루의 자연과 소박한 페루 사람들은 나에게 전에 없던 마음을 가르쳐 주었다. 그 마음은 앞으로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든 나를 이끌어 갈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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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방향을 잃은 대학생활

공부에 찌들어 있던 고등학생 시절, 나는 대학에만 가면 행복할 거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작년 한 해 동안, 나는 정체성을 잃어 버렸다. 남들이 다 가니까 그냥 들어간 대학에서 분명한 목표도 없고 꿈도 없이 하루하루 수업시간만 채워 가는 내 모습이 한심했다. ‘지금까지 나는 뭐하고 살았나?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공부를 위해 살았다. 나를 포장하면서…’ 그때 지인들을 통해 전부터 들었던 해외봉사활동이 생각났다. 좁은 대한민국을 벗어나서 나를 위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삶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어색함은 곧 익숙함으로

내가 선택한 나라는 남미대륙 서쪽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잉카문명의 본거지 페루였다. 처음 페루에 와서 버스를 탔던 때가 생각난다. 우리나라의 버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페루 시내버스는 일명 ‘버스 안내양’이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하기도 하고 발전되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길거리를 지날 때면 ‘치나(china)’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여기서는 눈이 옆으로 찢어진 동양인을 보면 무조건 ‘치나’라고 한다. 처음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하긴 지금은 모든 것이 다 평범하게 느껴진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도 페루 사람이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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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성숙하게 하는 오지여행

봉사활동 중에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한다. 끝없는 사막, 안데스 산맥, 그리고 아마존의 밀림까지 3색의 광활한 페루의 자연 앞에 서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 또한 여행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 주었다. 전에 내가 했던 여행은 지인들과 숙소를 예약해 두고 철저하게 계획을 짜서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여행은 ‘어디서 묵을지, 무엇을 먹을지’ 전혀 예정된 것이 없는 막연한 여행이었다. 돌이켜 보니 편하고 풍족한 여행보다 힘들고 어려웠던 여행이 훨씬 더 기억에 남는다.

10월에는 ‘아야꾸쵸 안다마르카(Ayacucho Andamarca)’라는 곳에 있는 친구 Ines의 할아버지의 집에 갔다. 5월에 방문했던 ‘쎄로 데 빠스코(Cerro de Pasco-해발 4,700미터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에 비하면 낮지만 그래도 해발 3,550미터에 있어 고산지대에 속하는 곳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쉬어도 적응을 할까 말까인데 소를 돌보러가는 Ines의 할머니를 따라나선 게 문제였다. 그날 저녁 머리가 아프고 소화가 안 되더니 숨도 쉬기 어려웠다. 전형적인 고산병 증세였다. 쎄로 데 빠스코에서의 악몽이 떠올라 할 수만 있다면 당장에 돌아가 버리고 싶었다. 할아버지 집이 고산지대에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지 않은 Ines가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날 밤 나는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하는데 누군가 진료실 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Ines의 할아버지였다. 연세가 많아 다리를 가누기도 힘드신데 내가 걱정이 되어 병원까지 찾아오신 것이었다. “Esta bien(괜찮니)?” 하고 물으시는데,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나 같으면 불쑥 찾아온 객이 아프다고 하면 귀찮고 신경 쓰일 텐데, 할아버지는 내가 뭐라고 여기까지 오셨나…. 할머니는 야생초를 불에 그을러 주시며 배에 넣고 자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케추아어를 하셔서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마음은 통했다. 나는 조건 없는 그분들의 사랑으로 고산병을 이겨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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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이끌어 갈 원동력

어떻게 일 년을 살까 했는데 벌써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곳에서 배운 것이 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는 페루에서 배운 말 중에 “Como esta(어떻게 지내세요)?”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들이 만나 이야기를 시작할 때 건네는 인사다. 마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좁은 내 안에 갇혀 살던 내가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페루 사람들의 조건 없는 사랑 덕분이다. 또한 너무 평범해서 모르고 살았던 작은 일들에 대해 감사할 줄도 알게 되었다. 모기에 1,000방을 물려도, 물이 없어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도 살 수 있음을 알았다.

이곳에서 얻은 새로운 마음들이 앞으로 나를 이끌어 갈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다. 나는 꿈이 생겼다. 에스파뇰을 계속 공부해서 다시 돌아오고 싶다. 나의 두 번째 고향 페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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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혜림 굿뉴스코 페루 9기 단원

숭실대학교 유기신소재파이버공학과 2학년인 그녀는 리마의 산마르코스(SAN MARCOS)대학교에서 한국어 클래스를 열어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리마에도 한류열풍이 불어 한국어 클래스는 인기만점이라고 한다. 페루의 산간마을에 사는 소박한 이들의 삶과 함께하며 진심어린 사랑과 감사를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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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르센 루팡>

뮤지컬 <아르센 루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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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3년 5월 5일까지
시간  화~금 8시 / 토 3시, 7시 / 일 2시, 6시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문의  02-736-8289
가격  R석 100,000원 / S석 80,000원 / A석 60,000원

  100년이 넘도록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아르센 루팡. 소설이 연재된 이후로 영화, 만화, 연극 등의 다양한 장르로 만들어졌으나 뮤지컬로 제작되는 건 처음이다. 뮤지컬 장르의 한계를 넘어 스펙타클한 영화적 속도감을 느낄 수 있으며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과 현대적 비트를 강조하였다.   영화적 감성의 음악과 드라마틱한 안무를 활용한 박진감 넘치는 퍼포먼스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1910년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으로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보석들이 차례로 사라진다. 하지만 왕가의 보석을 노리는 건 루팡 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범인들은 루팡에게 살인 누명까지 씌운다.   가니마르 경감과 영민한 소년 이지도르의 추격에 포위망은 좁혀지고 루팡의 여인 넬리까지 위기에 처한다. 왕가의 보석을 훔치고 훔치는 혼전속에 100년 간 숨겨온 진실이 드러나는데.  마음을 훔치는 정의로운 도둑 루팡 역에는 김다현, 양준모가 캐스팅되었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루팡의 여인 넬리 역에는 배다해와 문진아가 캐스팅되었다. 잔인한 범죄자 레오나르도역에는 서범석, 박영수가, 도발적인 조세핀 역에는 안유진과 선민이 열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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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dership] 정보과잉시대의 커뮤니케이터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책·신문·방송은 물론 인터넷·스마트폰·SNS 등 뉴 미디어로부터 연일 엄청난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 복잡한 정보도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단 한 장에 전하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가 각광받고 있다. 국내 첫 인포그래픽 업체인 ‘바이스버사’의 두 청년 대표가 말하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의 세계!

백 마디 말보다 강력한 이미지 한 장


안녕하세요? 인포그래픽 디자이너 김묘영, 정다은입니다. 여러분은 혹 인포그래픽infographic이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인포그래픽이라는 단어가 친숙하든 그렇지 않든, 여러분은 이미 인포그래픽을 여러 번 접해 보셨을 것이고 앞으로 접할 기회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인포그래픽이란 말 그대로 ‘정보information’와 ‘그래픽graphic’의 합성어로, 대량의 정보를 그래프·차트·이미지·로고·일러스트 등을 활용해 일목요연하고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이미지 매체를 말합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 붙어 있는 노선안내도, 선거 개표방송에 나오는 후보별·정당별·지역별 지지도를 분석해 보여주는 그래프 등도 넓은 의미의 인포그래픽에 해당합니다.


그렇다면 인포그래픽의 중요성은 왜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을까요? 오늘날은 책·신문·방송은 물론 인터넷과 스마트폰 붐을 타고 떠오른 페이스북·트위터·유투브·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방대한 정보가 쏟아지는, 이른바 ‘빅 데이터big data’ 시대입니다. 최근 2~3년간 만들어진 정보의 양은 인류가 과거 30만 년 동안 만든 정보의 양과 비슷하다니, 놀라울 따름이지요? 이같은 엄청난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하고 가공해 시각화visualize하고, 그 정보들 간의 관계나 의미, 패턴을 파악해서 이미지로 제시하는 것이 인포그래픽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출산율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 잘 알고 계시지요? 이대로 가면 2050년경에는 대한민국 인구 700만 명이 감소하고, 2110년에는 전체인구가 2,500~3,000만 명 정도로 줄어들 전망입니다. 약 400년 뒤에는 한민족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 정보를 인포그래픽으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위 내용에서 키워드는 바로 ‘대한민국’과 ‘인구’입니다. 대한민국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태극기나 한반도 지도 이미지가 주로 검색됩니다. 인구는 사람으로 대체해서 검색하면 다양한 이미지와 아이콘이 나옵니다. 이제는 이 둘을 결합하여 우리나라의 상징과도 같은 태극무늬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사라져가는 모습으로 인구 감소를 시각화하면 됩니다(다음 쪽 그림 참조). 이 인포그래픽은 간단하면서도 출산율 저하로 인한 인구 감소의 심각성을 잘 표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인포그래픽은 보는 이의 흥미를 유발할 뿐 아니라 방대한 양의 수치나 데이터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으며, 이미지로 되어 있어 뇌리에 오래 남고 SNS를 통해서도 빠르게 확산되는 효율적인 매체입니다.
 

인포그래픽, 모바일시대에 더욱 더 각광받는 매체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저희가 창업을 결심한 것도 이런 인포그래픽의 장점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인포그래픽이 기업이나 브랜드의 홍보·마케팅 수단, 언론 및 방송의 보도자료 등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었거든요. 우리나라에도 얼마 안 있어 인포그래픽이 각광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 저희 두 사람은 드디어 2010년 9월 1일, 노트북 한 대와 돈 50만 원씩을 갖고 ‘바이스버사 디자인 스튜디오’를 창업하게 됩니다. 바이스버사Vice Versa란 ‘거꾸로, 반대로’라는 뜻의 영어단어로,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항상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하고 연구하겠다는 크리에이터creator로서의 신념을 담은 이름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거창하고 규모 있는 프로젝트를 수주받아 진행해야지’ 하는 포부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험을 살려 공모전에도 응모하고, 평소 알고 지내던 트위터 친구들이나 함께 사무실을 쓰는 회사에서 일감을 받아 작업하면 그럭저럭 회사를 꾸려나갈 정도는 충분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침 국내에 스마트폰과 태블릿PC가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페이스북·트위터 등 SNS 사용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인포그래픽은 단숨에 주목받는 정보전달과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는 대신 걸어다니면서 SNS나 인터넷으로 정보를 주고받는 오늘날, 간단명료한 이미지로 구성된 인포그래픽은 쉽게 핵심을 파악할 수 있어 뇌의 부담을 줄여주거든요.


저희는 저희의 인포그래픽들을 회사 홈페이지v-vdesign.com와 트위터, 페이스북에 올려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게 했습니다. 온라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셈이었지요. 그런데 그 인포그래픽들이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면서 주문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세대재단, 문화체육관광부, SK브로드밴드, 아모레 퍼시픽, GS칼텍스, KBS, 한국관광공사 등 대기업이나 정부기관, 공공단체와 함께 일한 지 어느덧 6년째가 됐습니다. 대한민국 인포그래픽 어워드에서 최우수상 등을 수상했고, 한국관광공사의 감사패를 받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저희를 ‘춤추게’ 하는 건 역시 클라이언트의 찬사입니다. ‘역시 바이스버사야!’ ‘그 복잡하던 정보가 쏙 들어오네’ 하는 말을 들을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임팩트 있는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비결은?
인포그래픽을 주제로 학교나 기업, 단체에서 강연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을까요?’입니다. 인포그래픽도 일종의 디자인이기 때문에 1차적으로는 뛰어난 디자인 스킬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데이터를 해석하여 메시지를 구성하는 ‘기획능력’입니다.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려면 일러스트나 포토샵 등 이미지 제작·편집 프로그램 못지않게 데이터 분석·통계 프로그램인 엑셀을 다루는 데 능숙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데이터를 구조화시켜 하나의 일관된 흐름이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평소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풍부한 배경지식을 갖추기를 권합니다. 정치·문화·경제·IT·브랜드·일상생활 등 세상 모든 것이 인포그래픽의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주제로 제작의뢰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에 평소에도 인터넷 검색·자료 수집·광범위한 독서를 통해 상식을 쌓아두면 아무래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요.


최신 토픽이나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문도 두 개 이상씩을 구독하고 있으며, 바빠서 볼 시간이 없을 때는 스마트폰으로라도 반드시 뉴스를 확인하고 좋은 내용은 직원들과 공유한답니다. 길을 걷다가도 디자인에 영감을 주는 이미지나 풍경이 눈에 띄면 놓칠세라 스마트폰으로 찍어 둡니다. 덕분에 32기가나 되는 저장공간도 부족할 지경이지요. 톡톡 튀는 아이디어나 위트도 이런 성실한 노력이 뒷받침되는 가운데 나오는 것입니다.
또 인포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능력으로는 대범함과 세심함이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한 장에 담아낼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생각보다 매우 적습니다. 모든 데이터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검토한 뒤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내용을 인포그래픽에 반영할 수는 없습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잡아내는 통찰력과, 줄기를 잡아내되 곁가지는 과감히 잘라내는 ‘선택과 집중의 묘’가 필수입니다.


그리고 세심함, 즉 디테일에 강하면 더욱 더 완성도 높은 인포그래픽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 몇십 초 만에 스윽 훑어보는 간단한 인포그래픽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인포그래픽에 들어가는 로고나 아이콘, 사진, 폰트 등에는 엄연히 저작권이 있기 때문에 상업적 용도로도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한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또 정확함이 생명인 인포그래픽에서 오탈자나 틀린 정보가 있다면 곤란하겠지요? 저희를 믿고 일을 맡겨준 클라이언트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그래서 완성작이 나온 뒤에도 여러 번 출력해 체크합니다.
퀄리티 높은 인포그래픽을 만드는 마지막 요소로 팀워크를 꼽고 싶습니다. 저희 둘로 시작한 바이스버사 스튜디오도 어느덧 대학생 인턴을 포함해 8명으로 식구가 늘어났습니다. 인원이 늘어나면 더 크고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겠지요. 더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거치는 동안 결과물의 완성도도 높아지게 마련이고요. 그 과정에서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조율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랍니다. 

 

늘 새롭지 못하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저희는 대학에서 인터랙션interaction 디자인을 전공했습니다. 인터랙션이란 영어로는 ‘상호작용’이라는 의미인데요. 인간이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디자인 분야입니다. 평소 여러분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내비게이션의 인터페이스를 생각해 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입니다.


인터랙션 디자인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여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직관성입니다. 누가 봐도 ‘아, 이 기호는 이 뜻이구나’ 하고 단박에 이해할 수 있게 디자인해야 합니다. 점 하나를 찍고, 선 하나를 긋고, 색 하나를 칠하더라도 명확하고 논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가령 ‘남성의 뇌 vs. 여성의 뇌, 어떻게 다를까?’를 주제로 인포그래픽을 만든다고 해 봅시다. 흔히 남자는 파란색, 여자는 빨간색으로 표현됩니다. 그런데 남자를 빨간색, 여자를 파란색으로 표현한다면 보는 이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포그래픽에서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색을 활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를 주제로 한다면 빨간색을, 삼성이 클라이언트라면 파란색을 주로 써야 하겠지요? 이처럼 인포그래픽은 철저히 사용자를 배려하는 마인드에서 만들어집니다.


보통 대기업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들은 패션이면 패션, 전자제품이면 전자제품 식으로 한 가지 분야의 작업만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인포그래픽 디자이너는 다릅니다. 항상 다루는 주제가 바뀌고, 새로운 방식의 디자인이나 플랫폼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에 변화를 즐기고 도전하는 마인드를 배우고 싶은 이에게는 정말 좋은 직업입니다. 지난해 저희는 GS SHOP의 회사소개서를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올해 또 그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점을 완전히 달리해 새로 지은 GS SHOP 신사옥 사진을 찍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요즘 예전에 저희가 만들었던 인포그래픽들을 틈틈이 리뉴얼하는 중입니다. 처음 만들 당시에는 ‘열심히, 잘 만들었다’ 싶던 것들도 지금 와서 보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족한 점이 눈에 띄어 낯이 살짝 붉어지곤 합니다. 항상 새로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하루하루 새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주지 못한다면 저희 같은 크리에이터는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바로 저희 바이스버사만의 차별화전략이자 창의성의 원동력인 것입니다.

* 본 포스팅은 2015년 7월호 투머로우 기사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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