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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Synergymaker 시너지메이커 2020. 1. 27. 14:53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이 있습니다. 뜻은 한 권의 책을 백번 읽으면 그 뜻이 통하게 된다입니다. 비슷한 말로 독서백편의자통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인데요 알지 못하는 책을 백번을 읽으면 뜻이 통한다게 말이나 되는 것일까? 아무래도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에서 출발해볼 수 있습니다. ‘견(見)’은 원래 ‘보다’는 뜻이지만 ‘드러난다’고 할 때는 ‘현’으로 읽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두 가지 의미를 구분하기 위해 ‘보는 견(見)’과 ‘드러나는 현(現)’으로 나뉘게 되는데 현은 옥(玉)에 무늬가 있어서 눈에 훤히 보이는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고 합니다.

‘독서백편의자현’ 하면 주희가 한 말로 생각하기 쉽운데, 주희는 ‘훈학재규(訓學齋規)’에서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많이 읽다 보면 자연히 이해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주희는 사실 이 주장을 펼치면서 ‘독서백편의자현’이 후한 시대 동우(董遇)의 말로 소개했습니다. 동우는 가난하게 살면서 공부에 열중해 문명이 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배움을 청했다고 합니다. 

동우는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한 수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었습니다. “마땅히 먼저 책을 백 번 읽어야 한다. 그렇게 책을 백 번 읽다 보면 텍스트의 의미가 저절로 드러난다네(필당선독백편必當先讀百遍, 언독서백편기의자현言讀書百遍其義自見.).” 주희는 동우의 이 말을 7글자로 줄여서 입에 감기게 표현을 바꿨던 것입니다.

중국 후한 말기 사람인 동우는 글을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게서 배우기보다는 집에서 자네 혼자 읽고 또 읽어 보게, 그러면 저절로 뜻을 알게 될 것이네."라고 하면서 가르침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같은 글을 백 번을 반복하게 되면 그 의미가 저절로 통하게 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조선시대 교육 방식은 무식할 정도록 단순하고 간단했었습니다. 그 방법은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는 것입니다. 물론 천자문, 사서삼경 등 모든 서적들 자체가 하나의 금과 같은 책들로서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부분을 간과하고 무조건 백편이라함은 또 다른 물속에 비친 달을 띠우는 것입니다.


읽을 때는 눈으로만 읽지 않고 입과 귀로 읽는다. 낭독을 통한 독서법이 그것이다. 서당을 생각해보자. 훈장님이 앞에 앉아 계시고 천자문을 날마다 소리내어 읽도록 가르친다. 아이들은 모두 앉아서 소리내어 천자문을 읽기 시작한다. 한 목소리로 소리내어 말이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루 황..."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비록 초급에 해당되는 공부법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낭독 독서는 고대 그리스와 헤브라이즘과 라틴사상의 기초과정에 속합니다. 그리스 이후 철학사를 집대성하고 기독교 철학을 완성한 어거스틴은 그의 스승인 암브로스가 소리내지 않고 묵독으로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만큼 낭독 독서법은 보편화 되어 있었고 누구나 그렇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낭독독서법은 현대에 와서 소외되고 구시대적 교육법으로 이해되고 있는데요, 이유는 근대화 되면서 '속도'의 개념으로 학습에 대한 이해가 변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속도와 양을 중요시하는 근대 교육에서 낭독은 느리고 시끄럽고 효율적이지 못했다는 판단인듯합니다. 효율과 양이 곧 질이라는 이해가 팽배했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백번 읽는 것이 아니고 백권의 책을 읽는 것을 선호했었습니다. 이러한 학습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자 공부도 효율적이고 양적인 것을 절대화 시키며 본질적인 부분들을 소외 시키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그러한 결과가 바로 공교육이며 잡학식 커리큐럼을 지향하는 근대적 교육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벤덤의 '절대 다수의 절대 행복'은 영 다른 개념이 아니라 '옅은 행복을 모두에게'이다. 공부도 그렇다. '잡다한 지식을 모두에게'이다. 둘은 함께 생각하고 함께 통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은 끝이 없으며, 근본적인 본질인 독서백편의 목적과 목적지에 도달하는 최선의 방법을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처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현대 정보사회라는 현실적인 내가 디딛고 있는 땅도 보아야 합니다.

틀리고 맞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독서와 시간의 개념을 동시에 생각해보면 속도에 치중한 독서는 정보의 습득이 목적이며, 빠른 정보변화의 시대에 맞게 빠른 속도에 적응해야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사이클도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반면에 철학이나, 인문학등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에는 위의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란 말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을까 합니다. 독서도 하나의 인생이고 인생의 집약을 과연 한번보고 이해한다는것 자체가 또 다른 욕심의 발현이 아닐까합니다. 상황과 목표에 맞춰 정확한 독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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